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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08:47
샐러리맨 신화의 대명사로 불리던 인물이었던
김우중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친척이 운영하는 무역회사에서 바이어로 근무하다
1967년 독립해 자본금 500만원으로
대우실업을 창립하게 됩니다.
창업초기에는 동남아에
의류원단을 수출하는 중소기업이었지만 창업 5년만에
100만 달러 수출을 기록하고,
사업 범위를 공격적으로 확장 하며
현대, 삼성, 럭키그룹에 이은
4대 재벌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특히 1990년에는 미국의 사업가 도널드트럼프가
파산 지경에 놓이자 대우그룹과의 합작 사업인
뉴욕 트럼프월드를 성공하게 하면서 부동산 개발업자로서의 명성을 회복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서울과 대구, 부산 등에 도 트럼프 월드를 짓게 됩니다.
하지만 1997년 IMF가 발생하면서 은행 돈을 빌려
큰 판을 벌이는 대우의 경영 스타일은 발목을 잡히게 되며
1999년 워크아웃을 신청 합니다.
그리고 자그마치 21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분식회계를 통해 사기대출을 한 부분이 밝혀 지자
해외로 도피를 하며
중국, 베트남, 영국, 프랑스에서 7년간 생활을 하다
한국정부와 인터폴의 압박을 받고
2005년 귀국을 하게 됩니다.
귀국 후 구속 되며 재판을 받았는데
징역 8년 6개월, 벌금 1,000만 원,
추징금 17조 9,253억 원의 형을 선고받고 복역을 하는데
언론사들은 추징금을 어떻게 낼지를 집요하게 취재 하지만
재산의 대부분을 가족-친척들에게 분산시켜 놓은 상태였고 아들들에게는 유럽에서부터 동남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있는 대규모 골프장 운영을 맡기고
아내와 딸은 서울 종로 한복판에 있는
아트선재센터의 운영권을 맡겨 놓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특별사면을 받고 석방이 됩니다.
그후 치매로 투병생활을 하다 2019년 사망을 하게 되며
추징금 징수도 그가 사망함에 따라 종료가 되어 버립니다.
김우중은 사망했지만 그의
가족과 친인척들은
여전히 구 대우그룹 계열사들과는
끈끈한 커넥션을 이어가고 있고
상위1% 벌이와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