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볼딩(1910~1993). 볼딩 역시 평화운동가였고 철학자였다. 퀘이커교도였으며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었다. 노벨상에도 자주 추천되었다. 평화상은 물론이거니와 경제학상 후보로도 종종 물망에 올랐다(결국 그 상은 볼딩 사상의 연장선에 있는 대니얼 카너먼에게 주어졌다). 

볼딩은 경제학자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폴 사무엘슨의 <경제학(economics)>이 나오기 전까지 그의 첫 책 <경제분석(economic analysis)>은 당대 최고의 경제학 교과서였다. 노벨경제학상보다 받기 어렵다는 클라크 메달을 받았으며, 전미경제학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영국 리버풀에서 가난한 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화학을 전공으로 택해 장학금을 받고 옥스퍼드로 유학했다. 부유한 사립학교 출신 학생들의 대학에서 억양이 다른 그는 출신을 잊을 수 없었다. 대신 그때의 가장 어려운 문제인 실업과 전쟁을 해결하기 위해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박사를 마치지는 않았으나, 계급의식이 비교적 덜한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해방감을 느끼며 학문 영역을 넓혀갔다.  

시인으로서 여러 편의 소네트를 쓰는 데도 열성이었다. “사람들에게 주어진 네 가지는/ 위협, 교환, 설득, 그리고 사랑”인데 “증오보다 더 센 사랑은/ 퍼지는 데 오래 걸린다”고 묘사한 시를 경제학 논문 끝에 싣기도 했다. 자신의 논지를 시로 지은 셈이다. 

볼딩을 ‘주류’ 경제학자로만 보면 곤란하다. 그의 중대한 업적은 ‘진화경제학’에 있기 때문이다. 정보의 흐름을 다리로 해서, 사람들 한 명 한 명은 더 복잡한 하나의 유기체로 합쳐진다고 보았다. 이로 인해 경제·사회는 여러 갈래로 변화(진화)해 간다고 논증했다. 그러니까 앞서 말한 ‘창발적 진화’와 같은 뜻을 차용한 것이다. “코트 한 벌은 결국 여러 노동자 개개인의 노동력과 기술(정보)을 ‘조합’시켜 만든 것이다”라는 말은 그의 관점을 잘 보여준다. 저서 <생태역학(ecodynamics)>에서 유기체처럼 짜여진 복잡계가 갖는 위협-교환-통합의 일반적인 제도로 정치·경제를 이해했다. 또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이 보이는 창발적 진화가 경제효율뿐 아니라 사회윤리를 구현한다고도 논증했다.  

그는 시를 사랑하고 사람을 믿는 어머니에게서 시를 배웠다. “우주의 목적을/ 알 순 없을 것이네, 그러나 지금 여기서/ 우리는 일구고 나눌 수 있네/ 마음 지갑 속 풍부한 생각으로부터/ 과거, 현재, 미래 사람들의 머릿속 앎의 우주를.” 지금·여기에서 사람들로부터 만들어지는 거대한 변화를 읊었다. 그래서 그의 시는 곧 그의 경제학이다.

볼딩은 “부는 권력을 만들고, 권력은 부를 부순다”고 세계의 역사를 간추렸다. 생물진화는 협력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결국 모두가 서로에게 기대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협력하여 만들어지는 힘은 서로 의지하므로 의식이 있는 권력이 된다. 씨알들이 모이면, 앎과 생각을 따라 서로 모이면, 결국 온전한 새 것이 만들어질 것이다. 시에서도, 경제학에서도, 세계가 거쳐 온 역사에서도 이미 잘 드러나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