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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3 14:44

구구리 조회 수:18,217 댓글 수:176 추천:320

여친과 헤어지고나서 2월 결혼소식을 전해들은 후

한동안 서로 연락없이 지냈습니다.

여전히 메신저는 서로 등록이 되어있었고 간간히 올라오는 여친의 SNS 업데이트로

잘지내고 있구나..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죠


그러다 지난 주에 갑자기 메신저로 연락이 오더군요. 저에게 줄 것이 있으니 같이 식사하자고 말이죠

무슨 물건이냐고 물으니 끝까지 대답을 하지 않고 만나면 알게 될거라며 약속시간과 장소를 잡았습니다


다른 남자와 결혼날짜를 잡고 신혼집꾸미고 결혼식준비에 바쁜 전여친..


깨끗히 잊고서 그냥 마음비우고 살려고 노력하는 중에 이런 연락을 받으니 좀 당황스럽기도 했고

만나면 안될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갈등과는 상관없이 그 장소에 시간맞춰 나가게 되더군요


언제그랬냐는듯 환하게 웃어주며 절 반겨주고 우리는 근처 식당으로 갔습니다

대화의 주제는 거의 대부분 결혼준비는 잘되어가냐.. 신랑감은 잘해주냐 그런 얘기들이었죠

환하게 웃으면서 자기는 잘지낸다고 답하는 모습을 보며 그런가보다 했었습니다


식사를 하고서 근처 디저트카페로 옮겨 대화를 이어가는데 무언가 어두운 기색이 보이더군요

"왜? 무슨일 있는거야? 왜 그렇게 표정이 안좋아?"


대답도 하지않고 묵묵하게 차를 마시기만 하길래 무언가 사연이 있긴한데 말하긴 싫은가보다해서

더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 이젠 서로 헤어져야할 시간이다 싶어서 밖으로 나갔죠

예전같았으면 언제나 손을 잡든, 팔짱을 끼든, 어깨동무를 하며 걸었을 거리를 그냥 조금 떨어져서 걸으려니 너무 어색하더군요

그러다. 조용히 제 팔을 잡는 전여친..

"오빠...팔짱은 말고 이렇게 오빠 팔만 잡고 걸어도 될까?"

그냥 고개를 끄덕여줬죠. 솔직히 그 손끝 하나에서 느껴지는 무언가때문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지만 말이죠


그렇게 걷다가 결국 팔짱을 끼게 되더군요. 하지만 다른남자와 결혼까지 약속한 상태이니 저 뿐만 아니라

전여친도 조심해야겠다 싶어서 조금 밀어냈습니다


둘이 벤치에 앉아 두시간여를 대화했네요.

신랑감은 안정적인 직장에 스마트하고 차분한 남자.. 모든게 완벽하고 전여친 부모님들도 외국인이 아닌

같은 홍콩인과 결혼하게 되었다는데에 크게 만족하고 계시다고는 하는데


남자 집안이 제 전여친 집안에 비해 많이 부유하고 갖춘게 많은 집인 거 같더군요

상견례 후에 두번을 더 가족끼리 만났는데, 만날때마다 자기 부모님들이 무시당하는거 같아서 속상하다며

한숨을 쉬는데.. 저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이미 양가의 허락하에 혼인신고를 먼저했고 신혼집도 마련해서 같이 살고 있다고 하니

돌이키기도 쉽지 않은 상황.. 처음에 모든걸 잘들어주고 받아주던 신랑감도 시간이 갈수록

자기 집안의 편만 드는거 같아서 힘들다며 저에게 얘기를 하는데 뭐라 대답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누구든 결혼생활의 시작이 순탄하고 행복하기만 하겠나며 서로 맞춰가다보면 더 좋아질거라고 얘기하며

위로해주었죠

그러다가..


저에게 갑자기 안기고 흐느껴 우는 전여친..


자신이 제일 힘든건.. 지금의 이런 상황을 모두들 잘 된거라.. 결혼잘한거라 얘기하지만

그런 중에서 계속 안좋은 점을 찾게 되고.. 그 후엔 계속 저를 떠올리게 된다더군요


헤어진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런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지고 둘이 행복하게 살거라고 말은 해주었지만

저의 존재를 알고 있는 신랑의 차가워지는 시선과 말투에 대한 얘기를 들으니

죄책감과 함께 마음이 아파오더군요


"돌이키고 싶어?예전으로?"

순간 북받치는 감정을 동반해서 여친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고 싶냐고 말이죠. 그 순간엔 저도 정말 진심이었구요


그건 아니라고.. 이미 돌아갈 수 있는 단계는 지난거 같다고 대답하더군요

그냥 저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나 봅니다.


그 후론 조용히 안아주고서 토닥이며 진정시켜주기만 했네요


저녁먹고 밖으로 나온 시간이 6시정도.. 저녁 10시가 다 되어서야 우린 그 벤치를 떠났습니다

예전처럼 집앞까지 데려다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더군요


잘 가라며 차를 태워주려던 그 순간.. 저에게 무언가를 내미는 그녀

그 손엔 작은 악세시리 박스가 있었습니다


뭐냐고 물으니.. 그냥 아무말없이 저에게 건네주고 가더군요


떠나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그 박스를 열어보니 그 안엔 반지가...

메신저로 물어봤습니다..반지에 대해


'이 반지 뭐야? 왜 나한테 주는거야?'

'우리가 함께 하던 때.. 내가 오빠와 결혼하게 되면 주려고 돈모아서 미리 사두었던거야..'

'우린 헤어졌는데.. 왜 이걸 나한테 줘?'

'차마 팔수도 없고 누굴 주지도 못하겠어.. 그냥 오빠가 가져줘.. 내가 가지고 있으면 오빠 생각만 하게 되니까..'


씩씩한 대한의 남아라 자신하던 저를 무너뜨리더군요

그 길거리에서 눈물을 닦으며 한참을 하늘만 쳐다봤습니다


이 여자를 그냥 보내줘야 하는 걸까요?

수십, 수백의 여자를 만나온 저를 이렇게 흔드는 여자는 처음이네요


며칠동안 저녁마다 술마시고 마음아파하며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못한 사연인데..

여탑을 빌어 털어내 봅니다


*추신

떡치고 여자와 노는 얘기하는 공간에 이런 글 올린다고 가끔 뭐라하시는 분들이 계시던데

저에게 여탑은 놀이터이자 비밀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기 쉽지 않은 얘기를 털어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니

보기 싫다하더라고 그냥 넘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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