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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5 01:50
1990년대 초, 집집이 TV는 있어도 아직 비디오까진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지금으로선 믿기지도 않는 엄청난 시청률의 MBC 주말 연속극들이 있었다.
(최고 시청률 60%가 기본이었다!)‘엄마의 바다’(1993) ‘아들과 딸’(1992~1993) ‘사랑이 뭐길래’(1991~1992)….
그중 가장 명작을 하나만 꼽는다면, 아마 많은 이들이 ‘서울의 달’(1994)을 떠올릴 거다.
시골 청년 춘섭은 고향 친구이자 죽마고우인 홍식의 연락을 받고 상경한다.
취직시켜주겠다는 말에 전 재산 500만원을 들고 올라온 것. 춘섭은 서울에서의 삶과 성공에 대한 기대로 가득하지만,홍식은 그의 돈을 훔쳐 달아나 버린다.
허나 홍식은 아직 덜 익은 어설픈 사기꾼이다. 순박하지만 끈질긴 춘섭에게 금세 꼬리가 잡히고 만다.
무릎까지 꿇고 손이 발이 되게 싹싹 비는 홍식. 착한 춘섭은 이걸 또 용서해준다. 어쩌겠어, 패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춘섭이 말한다.
“이제부터 500만원 다 받을 때까지 너랑 먹고 자고 싸고 모든 걸 같이 할 거다.”
‘서울의 달’은 결코 간략한 줄거리로 요약할 수 없는 작품이다.
80부작이 넘는 대서사이기도 하지만 달동네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수많은 이웃집 군상들
각각이 조연이 아닌 ‘인생을 가진’ 캐릭터로서 사연을 품고 있다.
코믹한 터치가 많지만, ‘서울의 달’은 사실 무척 어두운 이야기다.
홍식은 약간의 주접을 거둬내면 누아르의 주인공 설정에 가까운데, 시청자들은 그가 악한임을 알면서도 응원하며 끝내 그의 성공을 바란다.
허나, 성공은 개뿔. 돈을 뜯어내려던 여자에게 “너란 인간한테 진심이란 게 있긴 하니?”
라는 비아냥거림이나 듣던 홍식의 삶이 해피엔딩일 리 없다.
그는 원한을 산 또 다른 여자로부터 불의의 기습을 받는다.
눈발 날리는 산동네 판자촌에서 싸늘히 죽어가는 홍식.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회, 마지막 장면. 영숙은 홍식의 주검을 대면한다. 식어버린 홍식의 얼굴을 매만지며 입을 여는 영숙.
“나는 네 진심을 알아.” 그리곤 시체의 입술에 입을 맞춘다. 동시에 멈춤 되는 화면.
엔딩 음악과 함께 크레디트가 올라가며 드라마가 끝났다.
당시 MBC 드라마국엔 주말마다 홍식이를 살려내라는 전화로 업무를 못 볼 지경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