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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9 15:11

모래그릇 조회 수:4,683 댓글 수:11 추천:15

미리 말하지만,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모든 남자가 이런 것은 아니다. 다만 확률상으로 남자가 이런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어쩌면 사회화 과정에서 남자는 뭐든 잘하고 뭐든 남보다 많이 알아야 하는 것처럼 강요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여자들은 대부분 이것이 무슨 이야기인지 알 거다. 10%밖에 모르면서 120% 아는 척하는 남자. 이런 총각들은 세상에 모르는 게 없다.

음식? 세상의 맛있는 가게들은 자기가 다 안다. 컴퓨터? 여자가 무슨 컴퓨터를 알겠어, 컴퓨터는 당연히 CPU는 이래야 하고 그래픽 카드는 저래야 하고...

패션? 남자도 요즘은 패션쯤이야 기본이지. 연예인 뒷이야기? 내가 아는 친구가 방송 PD랑 사돈의 팔촌의 옆집 사는데 말이지...  

, 친구가 이런 소리를 지껄이면 뒤통수를 한 대 치고 닥치셈 니마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회사 동료이거나 심지어 소개팅 자리 같은 데 나오면 대략난감이다.  

특히 이 남자가 아는 척하는 이야기가 나의 전문분야, 혹은 내가 취미가 있어서 잘 알고 있는 분야이면 정말로 난감하다. 이 쉐이를 확 깔아뭉개버려? 아니, 그럴 순 없지.

그러면 나의 순진하고 고고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망칠지도 모르니까. 내가 구하라 정도로 생긴 게 아닌 이상 피규어는 뭘로 만들어야 하고 색칠은 어떻게 해야 하고 빨간색은 3배 빨라요 같은 소리를 했다간 상대 남자가 백 킬로미터쯤 도망칠지도 모르는 거 아닌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저놈에게 "무슨 그런 오덕을 소개시켜 줘?" 같은 소리가 나오게 만드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니까

(여기서 한 가지, 소개팅에서 좋은 이미지를 주려고 노력하는 건 낚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기본이고 상식이다. 저놈을 내 어장에서 한 마리 어여쁜 물고기로 키워야지 하는 생각으로 마음에 안 드는 사람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는 게 아니다.

저런 삐꾸 물고기는 키울 가치조차 없다.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동안 노멀한 지구인은 예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거다.) 

사실 정말로 지식이 많아서 열심히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의 이야기에서는 이 사람이 정말 잘 알고 있다는 게 드러난다.

반면 어디서 주워들은 10%의 지식을 120% 뻥튀기 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티가 난다. "아이, 거기 음식은 맛없지. 스파게티는 알덴테로 삶아야 되고, 약간 씹는 맛이 있는 게 진짜배기라니까요.

요즘 촌스럽게 누가 토마토 소스 같은 거 먹어요? 알리오 올리오쯤은 되어야지. 알리오 올리오가 진짜 그 가게에서 스파게티 잘하는지 못하는지 알아보는 기준이에요. 역시 청담동 xx 가게가 알리오 올리오는 진짜 잘하죠."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해도, 상식이 결여되어 있는 대화다.

아니 이것은 대화가 아니라 모놀로그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줘야 하는 이 사람의 주장은 이거다. 1. 나 청담동 좀 다니는 남자야. 2. 나 스파게티 좀 먹어본 남자야. 3. 나 이대 나온 남자... 아니 이건 아니고

, , 그렇습니까. 근데 저는 스파게티란 집에서 제가 해먹는 게 제일 맛있더라구요...

120% 아는 척하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비슷비슷하다. 이들은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들을 생각 자체가 없다.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 지식을 뽐내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 하여 자신의 이미지를 업(이라고 쓰고 다운이라고 읽는다)시키는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잘난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10%의 지식을 가지고.  

이들은 상대방이 나보다 많은 종류의 지식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 즉시 이야기의 분야를 바꿔버린다.

혹은 상대방을 공격한다. "저 거기 가봤는데 거기 알리오 올리오 별로던데요. 거긴 감베로니가 더 나아요." , 감베로니? 그게 뭐지? 알 수 없는 것이 나오면 즉시 공격 자세를 취해야 한다.

"OO씨 그런 데도 가고, 된장녀네. 솔로가 뭐 그런 델 가요?" 혹은 "OO씨 스파게티 먹을 줄 모르네. 거기 감베로니는 영 아닌데. 내 친구의 친구가 이탈리아에서 유학하고 왔는데..."  

내 친구의 친구의 후배는 전지현의 절친이라니까... 전지현 소개시켜줄까? (그런 사람이 한 다리 건너면 어딘가에는 있겠지...) 

모르는 건 모른다고 인정하는 게 속편하다. 모르는 걸 아는 척하려다 보면 엄청나게 피곤한데, 뭐 하러 그런 일을 사서 하는가? 언제나 내가 이야기하는 상대방이 전문가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사실 10%밖에 모른다고 해서 상대가 나를 무시한다면, 그건 상대가 이상한 거다. 내가 세상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나에게도 80%쯤 아는 게 있고, 10%밖에 모르는 게 있다.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모든 걸 120% 아는 척하다가는 스트레스로 나이 서른에 대머리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듣는 사람이(여자든 남자든) 두어 번 이야기에 끼어들 듯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입을 다물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120% 허세의 쇼가 우스워서일 가능성이 높다.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필수 스킬이다. 이 스킬이 없으면 능력치 배분을 잘못한 거다.

지우고 캐릭터를 다시 뽑을 수는 없는 일이니 지금부터라도 포인트를 듣기 능력에 몰아주는 센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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