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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0 20:38
우즈베키스탄을 다녀온지도 제법 된것 같다.
그래도 그나라는 많이 바뀌지는 않았으리라, 생각 된다.
가기전부터 들은 말이 너무 많았다...........김태희가 밭을 갈고, 한가인이 소를 몬다고.......다들 부러워 했다.
직접가서 본, 우즈베키스탄은 전혀 달랐다. 실망 그 자체였다. 김태희 한가인 어쩌고 저쩌고 한 사람들 입을 재봉틀로 꼬매 버리고 싶었다.
현장을 가기 위해 잠시 묵어야 하는 타쉬켄트는 도시 느낌이 났지만, 호텔 벨보이 부터 나를 상대로 환전 사기를 치는 등 매우 인상이 나빴다...
타쉬켄트에서 약 500킬로쯤 떨어진 현장은, 그냥 시골 이였다. 옛날 우리나라 60년대 농촌풍경 그 자체였다.
도로는 비포장에, 포장도로도 군데 군데 너무 많이 파여서, 제대로 달릴수도 없었다.
당연히 김태희 한가인은 안드로메다로 갔다.
현장 사무실을 문을 열고, 현지 직원을 채용하기 시작했는데....2~3명 여직원이 채용되었다. 대부분 업무가 번역과 통역 이였다.
현지 업체 및 발주처는 현장에는 걍 노가다 일꾼 뿐이고,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타쉬켄트에서 근무 하고 있었다.
의사소통및 의사결정을 현장에서는 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담당자들은 각각, 타쉬켄트로 한달에 2~3번씩 출장을 가야 했다.
한국인은 비행기로, 현지인들은 기차로......
같이 일 하게 된 여직원중 제법 괜찮은 여직원이 있었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한국말도 잘 했기 때문에, 통역으로 같이 자주 다닐 수 있었다.
문제는, 기차로 이동을 해야 하는 그녀, 너무 힘들어 하길래, 개인비용을 들여서, 비행기표를 끊어주고 같이 다니기 시작 했다.
작은 호의를 보여줬다, 타쉬켄트 출장길이 즐거워 지기 시작 했다. 비행기표를 사주고, 출장기간 내내 식사도 함께 하고, 통역 문제로 하루종일 같이 있게 되었다.
그리고, 출장시 그녀의 숙소(자취방)에 머물수 있게 된것 이다....저녁 퇴근길, 같이 장을 보고 그녀가 만들어준 저녁을 먹고, 그곳에서 잤다.
맨처음 하루만 신사인척 했다.
그 다음날, 저녁 시장보러 가는길에, 손을 잡는것을 시작으로....그 다음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렇게, 한달에 2~3번....한번에 짧게는 3일...길게는 10일정도씩 함께 출장을 다녀며, 애정을 쌓아 갔다.
그러나 거기까지, 난 한국에 가족이 있으니까...뭘 더 해줄 수는 없었다.
얼마후 내가 회사를 옮기면, 우즈벡에서 철수하면서, 그냥 흐지부지 되었다.
1년이 채 안되는 짧은시간, 비록 김태희 한가인은 아니지만, 외롭지는 않은 시간이 되었다.
지금 그녀는 우즈벡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아기 낳고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