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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1 10:13
1947년에 미 군사 연락 임무단, 혹은 USMLM이라고 불리우는 연락 조직이 설립되었다. 동시에 영국, 프랑스, 소련도 각자 BRIXMIS, FMLM, SMLM을 만들었는데, 오늘 글에서는 SMLM은 빼고 소개하고자 한다.
이들의 표면상 임무는 미 유럽 주둔군 사령관과 독일 주둔소련군 사령관과의 연락을 주고받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훨씬 중요한 비밀 임무가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동독 내부의 첩보를 수집하는 일이었다.
1978년 가을, USMLM에 의해 도촬당한 T-64A들.
그렇다면 이들의 임무는 어떻게 수행되었을까?
이들은 동독에 연락 목적으로 "파견"을 나가는 형식으로 임무를 수행했는데,
두세 팀씩 개조된 민간 소형 세단 혹은 SUV에 나눠서 동독의 도로 및 야지를 달리며 스파이 임무를 수행했다.
만약 동독의 비밀경찰 "슈타지"나 소련군에게 발각되면 그 즉시 목숨을 건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체포를 피하기 위해 위험하리라만치 높은 속도로,
때로는 회피기동까지 해가며 갖은 방법으로 도망을 다녔다.
이들이 "공식적으로" 갈 수 있는 곳은 굉장히 한정되어 있었는데, 독일 주둔 소련군이 "임시 접근 금지 구역" 혹은 "영구 접근 금지 구역"을 실제로 보여주면 안되는 곳보다 훨씬 넓게 설정해놓았기 때문이다. (한때는 동독 영토의 40%가 "영구 접근 구역"이었을 정도이니 말 다한 것이다)
이러한 "접근 금지 구역"에 들어가는 임무를 허락맡으려면 미국 혹은 영국, 프랑스의 상급 지휘부에까지 허락을 맡아야 했고, 높으신 분들은 이 임무를 굉장히 위험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이 위험한 임무를 위해 포드 갤.럭시 1964년식 모델부터 1985년에는 포드 브롱코, 오펠 어드미럴, 그리고 주로 4륜구동 메르세데스-벤츠 280 GE "G- 바겐"이 쓰였다. 차량들이 도착하면 임무에 적합하게 개조되었는데, 기본 스프링은 더 무거운 스프링으로 교체되었고, 개량된 쇼크 업소버와 대용량 연료탱크가 장착되었다. 가끔, 차량 하부에 흡사 매드맥스마냥 철판을 깔아 주요 파트를 보호하는 개조도 실시되곤 했다.
차량은 창문을 제외한 모든 부위가 올리브 드랩으로 칠해졌고, 창문은 빛반사 때문에 소련군에게 들킬까봐 커튼을 달았다. 마지막으로, 누가봐도 미 군사 연락 임무단임을 알 수 있게 노란색에 미국 국기와 러시아어로 미 군사 연락 임무단이라고 쓰여진 번호판을 달았다.
1978년 6월: USMLM 차량이 제10근위전차사단 소속의 T-64A 옆을 지나고 있다.
이들의 초기 임무중 하나는 "소련군 쓰레기장 뒤지기"였다. 소련군은 한곳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 쓰레기장에 기밀 문서와 서류들을 그냥 버리고 갔는데,
USMLM은 이런 곳을 뒤져서 개꿀정보를 얻어내는 일을 하곤 했다.
1976년부터는 보다 체계적인 SANDDUNE 프로그램이 시작되어 이들은 소련군의 훈련 스케쥴, 전차 사격 테이블, 차량 정비 교범, 병력 순환배치 계획, 콜사인, 주파수, 신형 장비 기술교범까지 다양한 첩보들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영국도 SANDDUNE 프로그램과 비슷하게 타마리스크 작전을 실시했는데, 그 성과는 대담하고도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1981년 잠자는 소련군 보초 턱밑에서 신형 전차였던 T-64A의 모습과 강점 및 약점을 파악하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대담한 영국군들은 철로에 대기중이던 T-64A를 발견하곤 올라타 특수 제작된 텅스텐 펜과 쇠톱으로 장갑재를 잘라내 T-64A의 차체와 포탑 정면장갑 구조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이들은 소련군 사격 훈련장에 침투해 건물 문을 따고 들어가 T-64A 5량과 훈련용 포탑을 발견해 내부 사진까지 유유히 찍고 나왔다.
게다가 더 미스테리했던 T-80B에 대한 첩보 또한 수집하는데 성공했으니, "근 10년간의 가장 중요한 첩보"로 평가되었던 당시의 평가는 전혀 과대평가 된 것이 아니었다. 영국은 이 첩보를 바탕으로 신형 120mm L23 APFSDS를 개발하게 된다.
1984년에는 미국 또한 보관중이던 T-64B의 내부에 침투하는데 성공해 24간동안 구석구석 둘러본 후 귀중한 내부 사진과 이 전차가 레이저 거리측정기와 포발사 미사일을 운용한다는 첩보를 얻을 수 있었다.
1985년에는 프랑스도 한 건 올리는데, 바로 소련 전차들이 반응장갑을 탑재한 사진을 찍어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야말로 귀중한 첩보를 얻어낸 대성공한 작전이었던 것이다.
T-64B의 내부 사진.
이러한 성과에는 큰 위험이 따랐으니, 예를 들자면 아래와 같다.
•1978년에는 열차에 실린 T-64A의 부대식별표식을 조사하다가 소련군 보초가 쏜 총알 4발이 차량에 박혔다.
•1979년에는 소련군 트럭이 고의로 차량 옆구리를 들이받아 차가 길 밖으로 떨어져 2바퀴를 굴렀고, 탑승 장교는 4주동안 혼수상태에 빠졌었다.
•1980년에는 철길 옆에서 소련군 장비를 조사중이던 USMLM 팀 차량에 소련군 트럭이 고의로 들이받았다.
•1984년에는 도로공사중이던 소련군을 지나치는데, 소련군 장교가 갑자기 자동차 앞유리에 야삽을 휘둘렀다.
그리고 1985년 4월에는, USMLM 소속의 미군 장교에게 보초가 조준사격을 해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둬 고르바초프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결국 1988년에 소련 국방장관이 사과한 일 까지 발생했다. 미군 내부에선 해당 사건의 사망자인 장교가 84년에 소련군 T-64B 내부에 들어갔던 그 장교라 보복 공격을 했다는 석연찮은 소문이 돌기도 했었다.
이러한 희생이 있었기에, 아마도 그들은 살떨리는 냉전기에 소련의 최첨단 전차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T-80전차들이 돈이 없어서 팔려나가거나, 긴빠이 당하거나 하는 게 아닌, 소련이 서슬푸른 눈을 뜨고 살아있던 시절에 이러한 작전을 수행한 이들의 용기와 배짱은 정말로 경외할 만 하다고 평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이 글은 주로 2011년 ARMOR지에 실린 글을 바탕으로 했으며, 원문 주소는 아래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