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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3 09:43

키방매니아 조회 수:204 댓글 수:1 추천:0

동명성왕 : 그를 주몽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 <동명성왕>조에 나와 있다. "시조 동명성왕(東明聖王)은 성이 고씨(高氏)이고, 이름이 주몽(朱蒙)이다[추모(鄒牟) 또는 중해(衆解)라고도 하였다]. 그의 나이 겨우 일곱 살이었을 때에 남달리 뛰어나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면 백발백중이었다. 부여의 속어에 활 잘 쏘는 것을 주몽(朱蒙)이라고 하였으므로 이것으로 이름을 삼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서도 같은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동명왕을 부르는 호칭이 많은데, 이는 당시에는 발음이 같거나 비슷하면 다른 한자로도 같은 이름이나 지명 따위를 표기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동부여왕(東扶餘王) 해부루(解夫婁)가 죽고 금와(金蛙)가 즉위하였는데, 이때 금와왕은 태백산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를 만났다. 유화는 말하기를 천제의 아들 해모수(解慕漱)가 자기를 유인하여 사통(私通)하고는 돌아오지 않아 부모에게 쫓겨나 우발수에 살고 있다 하므로, 금와왕은 유화를 데려다 궁중에 유폐시켰다.

어느날 유화는 햇빛을 받고 임신하여 알 하나를 낳았다. 그 알에서 남아(男兒)가 나와 성장하니 이가 곧 주몽이다. 주몽이 7세 때 이미 활을 잘 쏘는 등 영특하고 총명하자 금와왕의 장자 대소(帶素) 등 일곱 왕자 및 여러 신하들이 시기하여 죽이려 하였다.

이에 유화 부인의 뜻을 따라 화를 피하여 졸본부여(卒本扶餘)로 남하, BC 37년 나라를 세워 국호를 고구려라 하고, 성(姓)을 고(高)라 하였다. BC 36년 비류국(沸流國)의 왕 송양(松讓)의 항복을 받았고, BC 34년에는 성곽과 궁실을 건립하였으며, BC 33년 행인국(荇人國)을 정복하고, BC 28년 북옥저(北沃沮)를 멸망시켰다.

 

태조왕 :

휘 궁(宮). 아명 어수(於漱). 유리왕의 손자이며, 왕족인 고추가(古鄒加) 재사(再思)의 아들. 국조왕(國祖王)이라고도 한다. 모본왕(慕本王)이 죽은 후, 태자가 영특하지 못하여 신하들의 추대를 받아 7세에 왕이 되었으나, 태후(太后)가 섭정하였다.

56년(태조왕 4) 동옥저(東沃沮)를 정벌, 영토를 동으로는 창해(滄海), 남으로는 살수(薩水:淸川江)에 이르게 하였으며, 68년에는 갈사국을 병합하였다. 72년 부족장인 달가(達賈)를 파견하여 조나(藻那)를 정벌하고, 121년 한(漢)나라의 요수현(遼燧縣)을 공격하여 요동태수(遼東太守) 채풍(蔡諷)을 죽이는 등, 서북면의 영토를 넓혔다.

또한 정치체제 확립에 힘써 종래의 부족국가적 형태에서 중앙집권적 형태로 체제를 정비하였다. 146년 동생인 수성(遂成:차대왕)이 왕위를 탐내자 그에게 양위하고 별궁으로 은퇴하여 태조왕이라 하였다. 165년(신대왕 1) 119세로 죽어 한국 역사상 가장 장수한 왕이 되었다.

태조왕 때부터 계루부가 왕위를 계승하였으며, 이후 고구려 왕 세차(世次)의 확실한 연대가 시작되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가 실질적인 국가로서의 면목을 갖춘 것은 이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고국천왕 :

이름은 남무(男武)이며 신대왕(新大王)의 둘째 아들이다. 국양왕(國襄王)이라고도 한다. 비(妃)는 연나부 우소(于素)의 딸이다.

179년에 신대왕이 죽은 뒤, 대신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184년 한나라 요동태수(遼東太守)의 침입을 막아 싸워서 대승하였다. 190~191년에 연나부의 귀족 좌가려와 어비류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였다. 191년 을파소(乙巴素)를 국상(國相)으로 등용하여 현정(賢政)을 베풀고, 을파소를 천거한 안류(晏留)를 대사자(大使者)로 삼았다.

194년에는 매년 3~7월에 관가의 곡식을 가구(家口)수에 따라 차등을 두어 대여하였다가 10월에 환납(還納)하는 진대법(賑貸法)을 실시하였다. 이는 백성들의 빈곤을 덜어 주고 농민층이 귀족 세력에 예속되는 것을 막아 왕권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고국천왕 때를 계기로 왕위계승방법이 형제상속에서 부자상속으로 바뀌었다.

 

미천왕 :

성 고씨(高氏)이고 이름 을불(乙弗) ·우불(憂弗)이다. 서천왕의 손자이며, 고추가(古鄒加) 돌고(咄固)의 아들이다. 호양왕(好壤王)이라고도 한다. 큰아버지 봉상왕이 아버지를 죽일 때 민가(民家)에 숨어 화를 면하였으며, 소금장수 등을 하며 지냈다.

뒤에 국상(國相) 창조리(倉助利) 등이 봉상왕을 폐하자 왕위에 올랐다. 국토 확장에 진력하여, 302년 군사 3만으로 현도군(玄菟郡)을 공격, 적군 8,000명을 사로잡았다. 311년 요동 서안평(西安平)을 점령하였으며, 313년 낙랑군(樂浪郡)을 공략하여 적군 1,000명을 사로잡았다. 이로써 낙랑군은 멸망하였다. 314년 대방군(帶方郡)을 정벌하여 영토로 삼았다.

당시에는 요동지역을 지배해 오던 진(晉)의 통제력이 약해지면서 선비족(鮮卑族)의 일파인 모용부(慕容部)가 세력을 확장하였다. 고구려는 영토확장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이들과 자주 충돌했다. 그래서 고구려는 진의 평주사자 최비 등과 연합하여 모용부를 공격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요동지역은 모용부의 영토가 되었다. 미천왕은 그 이후에도 요동지역을 차지 하기 위해 모용부를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미천왕은 죽은 뒤, 미천지원(美川之原)에 묻혔다.

 

고국원왕:

이름 사유(斯由) ·쇠(釗). 미천왕의 아들. 국강상왕(國岡上王)이라고도 한다. 314년(미천왕 15) 태자로 책봉되고, 즉위하자 평양성(平壤城)을 증축하였으며 국내성(國內城)을 쌓았다. 342년 환도성(丸都城)으로 천도한 뒤 수차례 연(燕)나라의 침입을 받다가, 4만 군사를 거느린 모용 황(慕容皝)에게 미천왕의 시체를 빼앗기고, 왕모(王母) 주씨와 왕비(王妃)가 납치되었다.

343년 동생을 연나라에 파견, 조공(朝貢)을 바쳐 미천왕의 시체와 왕비를 찾아왔고, 355년 다시 조공하여 왕모를 찾아왔다. 369년 2만 군대로 백제를 공격하였으나 패하고, 371년 침입한 백제 근초고왕 군과 평양성에서 싸우다가 죽었다.

 

소수림왕 : 

소해주류왕(小解朱留王)이라고도 하며 이름은 구부(丘夫)이다. 고국원왕(故國原王)의 아들로 355년(고국원왕 25) 태자로 책봉되었다. 371년 고국원왕이 백제 군과 평양에서 싸우다가 유시(流矢)에 맞아 전사하자 그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소수림왕이 즉위한 당시는 국왕이 전사한 상황에서 국가의 체제 정비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넓은 영토와 주민들을 체계적으로 통치할 제도의 정비가 요구되던 시기였다.

따라서 소수림왕은 즉위 후, 국가를 새로운 체제로 정비해 나갔다. 먼저, 372년 전진 왕 부견(符堅)이 보낸 승려 순도(順道)가 가져온 불상과 경문을 받아들여 최초로 불교를 수입하였다. 불교를 도입한 이유로는 전진(前秦)과 평화적 관계를 수립하고자 한 것과 호국사상의 필요성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같은 해 교육기관인 태학(太學)을 설립하였다. 태학은 유교적 정치이념에 충실한 인재를 양성하여 중앙집권적 정치제도에 적합한 관리를 양성하였다.

373년에는 율령(律令)을 반포하여 국가통치와 사회질서 유지를 위한 규범들을 갖추었다. 율(律)은 형법법전, 령(令)은 비형벌적 민정법전으로 중국에서 성립된 성문법이다. 이러한 소수림왕의 체제정비 시책들을 기반으로 고구려는 5세기에 전성기를 누렸다.

대외 관계에 있어서는 백제와 충돌이 계속되었는데, 375년에는 백제의 수곡성(水谷城)을 빼앗았으며 377년에는 3만 대군의 백제군 침공을 물리치고 백제의 북변(北邊)을 역습하였다. 그러나 378년에 거란(契丹)에게 북변을 빼앗겼다. 죽은 뒤, 소수림(小獸林)에 묻혔으며 동생 이련(고국양왕)이 즉위하였다.

 

광개토대왕 :

이름은 담덕(談德)이며 소수림왕의 정치적 안정을 기반으로 최대의 영토를 확장한 정복 군주이다. 그의 완전한 묘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다. 이를 줄여서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으로 부르기도 하나, 일반적으로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보다는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생존시의 칭호는 영락대왕(永樂大王)이었다. 또한 그가 쓴 영락(永樂)이란 연호는 한국에서 사용된 최초의 연호로 알려져 있다.

즉위 초부터 대방(帶方) 탈환전을 개시하여 백제의 북쪽을 진격하여서 석현(石峴) 등 10성을 함락하였고, 396년(광개토왕 6: 백제 아신왕) 친히 수군을 거느리고 백제를 정벌하여 58성을 차지하였으며, 왕제(王弟)와 대신 10인을 볼모로 삼아 개선하였다.

이리하여 한강 이북과 예성강 이동의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400년에는 신라 내물왕의 요청으로 5만의 원군을 보내어 왜구를 격퇴시켰으며, 동예(東濊)를 통합하고(410), 신라와는 하슬라(何瑟羅)를 경계로 삼았다. 또 연(燕)나라의 모용 희(慕容熙)를 반격하여 신성(新城)·남소(南蘇)의 2성 등 700여 리의 땅을 탈취하였고, 405∼406년 후연(後燕)의 모용 희의 침입을 2번 받았으나 요동성(遼東城)과 목저성(木底城)에서 모두 격퇴하였다. 407년 모용 희를 죽이고 자립한 고운(高雲)과는 수교를 맺기도 하였다. 410년에는 동부여(東夫餘)를 정벌하여 64성을 공파함으로써 동부여가 고구려의 판도 안에 들게 되었다. 또한 남하하여 한강선까지 진출하였으며, 서쪽으로 후연을 격파하고 요동지역을 확보함으로써 만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였다. 그의 능은 소재 미상이나 장수왕이 414년에 세운 광개토대왕릉비(中國 吉林省集安縣 通溝 소재)에는 왕의 업적이 기록되어 있다.

 

장수왕 :

휘 거련(巨連:巨璉).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의 맏아들이다. 모습이 괴걸(魁傑)하고 지기(志氣)가 호매(豪邁)한 대장부로, 409년(광개토대왕 19) 태자로 책봉되고, 413년 부왕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그해 동진(東晉)과 사신을 파견하여 국교를 맺었으며, 414년에는 광개토왕비를 건립하였다. 427년(장수왕 15)에는 만주 퉁거우[通溝] 지방의 국내성(國內城)에서 평양(平壤)으로 천도하여 적극적인 남하정책을 추진하였다.

중국에 남조의 송과 북조의 북위가 대립하는 남북조시대가 열리자 장수왕은 중국의 각 국과 다중적인 외교관계를 통해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했다. 436년(장수왕 24)에 북연 왕 풍홍이 고구려로 망명해 온 사건과 466년(장수왕 54년)에 북위의 청혼을 거절한 일로 북위와 갈등 상태에 있기도 했으나 백제와 신라의 고구려 위협을 돌파하고자 북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고구려의 남진정책으로 위협을 느낀 백제는 신라와 함께 연합을 추진하여 '나제동맹'을 맺었다. 또한 백제 개로왕(蓋鹵王)은 북위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 공격에 대한 군사원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북위는 이 사실을 고구려에 알려주었고 장수왕은 백제 공격을 준비하였다. 승려 도림(道琳)을 백제에 첩자로 파견하여 백제의 허실을 탐지하는 한편 백제의 국고와 민력을 소모시키고 나서, 475년 군대를 이끌고 백제를 공격하였다. 백제의 수도 한성(漢城)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사로잡아 죽였다. 이로 인해 백제는 수도를 웅진(공주)로 옮길 수 밖에 없었다.

450년에 실직(현재 삼척)에서 고구려 장수가 신라에 의해 살해되고 464년에는 신라에 주둔하던 고구려 군인 100명이 살해되자 468년(장수왕 56)에 고구려는 말갈 군사와 함께 신라의 실직성을 공격하였다. 481년에는 호명성(狐鳴城) 등 7성을 함락시켜 미질부(彌秩夫:경북 흥해)까지 진군하였다.

이로써 고구려는 동으로는 훈춘[琿春], 남으로는 아산만(牙山灣)에서 동쪽의 죽령(竹嶺)에 이르렀고, 북서쪽으로는 랴오허강[遼河] 이동(以東)의 만주지방 대부분을 차지하여, 광활한 영토를 차지했다. 내정개혁에도 힘을 기울여 부족제도를 지방행정제도로 고쳐 5부를 신설하는 등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룩하였다.

보장왕 :

이름 장(臧). 영류왕의 아우·태양왕의 아들. 영류왕을 시해한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다. 재위기간 동안 실권은 연개소문이 가지고 있었다. 643년 연개소문의 주장에 따라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도교(道敎)를 구하여, 숙달(叔達) 등 도사(道士) 8명과 함께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을 받아들였다. 645년 당나라 태종이 침입하였으나 연개소문이 독전, 격퇴하였다. 661년 당나라 소정방(蘇定方)이 신라군과 합세하여 평양성을 공격하였지만, 다음해 연개소문이 다시 격퇴하였다. 그러나 연개소문이 병사한 뒤에 내분으로 국정이 어지럽자, 668년 나 ·당(羅唐)연합군은 다시 고구려를 침입하였다.

당시 연개소문의 장남 남생(男生)은 고구려를 배반하고 당나라에 협력한 때이므로, 둘째 아들 남건(男建)이 막리지(莫離支)로서 나 ·당연합군을 맞아 싸웠다. 그러나 평양성이 함락되면서 고구려는 망하였고, 그는 당나라로 압송되었다. 뒤에 당나라로부터 사평대상백원외동정(司平大常伯員外同正)에 책봉되었다. 고구려 유민의 부흥운동이 지속되자 677년(문무왕 17)에 당은 그를 요동주도독 조선왕(遼東州都督朝鮮王)에 봉하고 안동도호부로 부임하게 하여 고구려 유민을 무마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 지역의 말갈족과 손을 잡고 고구려 부흥을 도모하다가 실패하여, 681년(신문왕 1) 공주(邛州:쓰촨성 邛峽)에 유배되었다. 뒤에 당나라 고종은 위위경(衛尉卿)으로 추증하였다.

 

<<백제>>

 

온조왕 :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東明聖王: 朱蒙)의 셋째 아들이다. 북부여에서 동명성왕의 전처 소생인 유리(琉璃)가 졸본부여(卒本扶餘: 고구려)로 와서 고구려의 태자가 되자 동복형 비류(沸流)와 함께 남하하여 비류는 미추홀(彌鄒忽: 종전에는 仁川으로 比定하였으나, 최근에는 충청남도 아산시 仁州面 지방이라는 설이 유력)로 가고, 온조는 하남(河南)의 위례성(慰禮城: 풍납토성이라는 설이 유력)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십제(十濟)라 하였다.

얼마 뒤 비류가 죽고 그 백성들이 위례성에 모여들어 국호를 백제로 고치고 동명왕묘(東明王廟)를 세워 제사를 지냈다(이상은 모두 BC 18년의 일로 기록되어 있다). BC 5년(온조왕 14)에는 남한산(南漢山)에 천도하고 9년에는 마한(馬韓)을 멸망시켰으며, 10년에는 아들 다루(多婁)를 태자로 책봉하였다.

 

근초고왕 : 

조고왕(照古王), 초고왕(肖古王)이라고도 한다. 비류왕(比流王)의 둘째아들로 태어났으며 4세기 중반에 백제를 크게 발전시킨 왕이다. 369년경 마한(馬韓)과 대방(帶方)을 병합했으며, 371년 고구려 군사를 대동강에서 무찌르고 평양성을 점령하여 고국원왕(故國原王)을 전사시켰다. 이로써 백제는 지금의 경기·충청·전라도의 전부와 강원·황해도의 일부를 차지하는 강력한 고대국가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한산(漢山: 서울)으로 수도를 옮기고 중국 동진(東晋)에 조공을 바치며, 남조(南朝)문화를 수입하여 일본에 전하였다. 아직기(阿直岐)·왕인(王仁)을 일본에 파견해서 학문을 전파하는 등 외교적 수완도 발휘하였으며 박사(博士) 고흥(高興)에게 백제의 국사 《서기(書記)》를 쓰게 하였다. 근초고왕 때 백제는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의 요서지방과 산둥지방, 일본의 규슈지방까지 진출하였다. 이를 계기로 백제의 왕권은 점차 전제화되었으며, 그 결과 부족연맹의 세력을 누르고 부자상속에 의한 왕위계승이 시작되었다

 

침류왕 :

근구수왕(近仇首王)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아이부인(阿爾夫人)이다. 즉위하자 중국 진(晉)나라에 조공을 바쳤으며, 호승(胡僧)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백제에 왔을 때 이를 왕궁에 영접하였다. 이것이 백제에서 불교 전래의 시초이며, 백제에서는 이 때부터 불법(佛法)을 시행하였다. 385년 한산(漢山)에 절을 창건하였고 9개월 후에 사망하였다. 동생인 진사왕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고이왕 :

구이왕(久爾王)·고모왕(古慕王)이라고도 한다. 제5대 초고왕의 아우이다. 제6대 구수왕의 뒤를 이어 맏아들 사반왕(沙伴王)이 왕위에 올랐으나, 아직 어리므로 이를 폐위시키고 왕위를 계승했다. 왕은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왕권을 강화하여 국가 기반을 확립하였다.

삼국사기》에 보면 260년(고이왕 27) 1월에 관제를 제정하여 내신좌평(內臣佐平)·내두(內頭)좌평·내법(內法)좌평·위사(衛士)좌평·조정(朝廷)좌평·병관(兵官)좌평 등 6좌평과, 좌평·달솔(達率)·은솔(恩率)·덕솔(德率)·한솔(扞率)·나솔(奈率)·장덕(將德)·시덕(施德)·고덕(固德)·계덕(季德)·대덕(對德)·문독(文督)·무독(武督)·좌군(佐軍)·진무(振武)·극우(剋虞) 등 16 직제를 마련하였고, 2월에는 복장제(服裝制)를 마련하여 6품 이상의 관원은 자색(紫色)관복에 은화(銀花)의 관을 쓰고, 11품 이상은 비색(緋色), 16품 이상은 청색 관복을 착용하게 하였다.

이렇듯 모든 관제를 마련하였을 뿐 아니라, 부락정치나 다름없던 정치체제를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로 발전시켰고, 신라의 변방을 침범하여 영토를 확장하는 데도 진력하여 건국 태조와 같은 업적을 남겼다.

 

개로왕 : 

이름 여경(餘慶). 초명 경가(慶可). 근개루왕(近蓋婁王)이라고도 한다. 비유왕(毗有王)의 장남이다. 472년 고구려의 남하정책을 막기 위해 북위(北魏)에 원병을 청했으나 거절당하였다.오히려 북위가 이러한 사실을 고구려에 알려주었고, 이를 알게된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 공격을 준비하였다.

개로왕은 고구려에서 첩자로 보내온 승려 도림(道琳)을 가까이 하여, 나라의 기밀을 누설하였다. 도림의 꾐에 빠져 급하지도 않은 방대한 토목공사를 일으켜 국가재정을 낭비하였다. 또한 귀족세력들을 배제한 왕족 중심의 집권체제를 추구하여 백제 내부의 결속력을 약화시켰다.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계획적인 침입을 받고 성 밖으로 도망치다 붙잡혀 죽었으며, 위례성을 빼앗겼다.

 

무령왕 : 이름은 사마(斯摩)·융(隆), 시호는 무령(武寧)이다. 무령왕의 계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개로왕의 동생인 곤지(昆支)의 아들이며 동성왕의 배다른 형이라는 설이 설득력을 받고 있다. 501년 백가(苩加)가 보낸 자객에 의해 동성왕이 죽자 뒤를 이어 40세의 나이에 즉위하였다. 502년(무령왕 2) 가림성(加林城)에서 백가가 반란을 일으키자 정벌하였다.

전(前) 왕인 동성왕은 신진세력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다 비대해진 신진세력에 의해 시해되었다. 그래서 무령왕은 구귀족세력을 등용하여 신구 세력 간의 균형을 유지하며 왕권을 안정화시켜 나갔다. 또, 22담로에 왕족들을 파견하여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였다.

한강유역을 잃고 웅진으로 천도한 상태에서, 금강유역과 호남평야를 개발하기 위해 수리시설을 확충하고 유민들을 귀농시키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유민을 정착시키고 농업 노동력을 확보하여 조세 기반을 마련하였다.

대외관계에 있어서 고구려에 대해서는 공격적인 입장을 취했다. 즉위하던 해인 501년에 달솔 우영을 보내 고구려의 수곡성(水谷城)을 공격하였고, 이듬해에도 고구려의 변경을 공격했다.

507년에는 말갈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장령성(長嶺城)을 쌓았다. 512년 중국 양(梁)나라에 조공(朝貢)하였으며, 같은 해 고구려의 침입을 받아 가불(加弗)·원산(圓山)의 두 성을 빼앗겼다. 521년 양나라의 무제(武帝)는 무령왕을 사지절도독백제제군사 영동대장군(使持節都督百濟諸軍事寧東大將軍)에 책봉하였다. 523년 인우(因友)·사오(沙烏) 등에게 명하여 한북주(漢北州)의 장정을 동원시켜 쌍현성(雙峴城)을 쌓았다. 1971년 무령왕과 왕비가 합장된 능(陵)이 충남 공주(公州)에서 발굴되었다.

 

성왕 :  ≪일본서기≫에는 성명왕(聖明王)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다. 휘(諱)는 명농(明襛)이며 무령왕(武寧王)의 아들이다. 무령왕과 함께 백제의 영주(英主)라 일컬어진다. 523년 패수(浿水)에 침입한 고구려군을 장군 지충(知忠)으로 하여금 물리치게 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양(梁)나라 고조(高祖)와 국교를 강화하여 고조로부터 '지절도독백제제군사수동장군백제왕(持節都督百濟諸軍事綏東將軍百濟王)'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529년 고구려의 침입을 받아 큰 피해를 입은 후 고구려에 대해서는 신라와 동맹을 맺어 공동으로 대처하였으며, 532년 금관가야(金官伽倻)가 신라에 항복하자 왕은 잔존 가야제국(伽倻諸國)을 회유하여 표면상으로는 신라에 대하여 적대(敵對)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실제적으로는 가야의 분할을 획책하였다.

538년 협소한 웅진(熊津:충남 공주)으로부터 광활한 사비성(泗沘城:충남 부여)으로 천도하고 국호를 남부여(南扶餘)로 고쳤으며, 중앙의 22부(部), 지방의 5부(部)·5방(方)제도를 이때 실시한 것으로 추측된다. 541년 양(梁)나라로부터 모시박사(毛詩博士)·공장(工匠)·화사(畵師) 등을 초빙하고 《열반경(涅槃經)》 등을 들여와 문화중흥을 이루고자 하였다.

550년 고구려의 도살성(道薩城)을 쳐서 빼앗고, 그 이듬해에는 신라와 함께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던 한강(漢江) 유역을 공격하여 76년간이나 고구려에 빼앗겼던 군(郡)을 되찾았다.

552년 일본에 노리사치계를 보내 일본에 금동석가상 1구, 미륵석불, 불경을 전했다. 이 밖에 오경박사역박사의박사 등을 일본으로 보내 학술과 전문지식을 전수하였다.
 
553년 백제가 병합하려는 한강 유역을 신라가 차지하자 신라에 보복하기 위해  이듬해 일본에 구원병을 청하는 한편, 왕자 여창(餘昌:27대 위덕왕)과 함께 친히 군사를 동원하여 신라 공격에 나섰다. 그러나 신라의 군주(軍主) 무력(武力)에게 대패하고 관산성(管山城)에서 신라의 복병(伏兵)에 의하여 전사하였다.

 

의자왕 : 

의자(義慈)는 휘(諱)로서, 그는 왕의 시호가 없다. 무왕의 맏아들로 태어나 632년(무왕33) 태자로 책봉되었다. 효성과 형제애가 지극하여 해동증자(海東曾子)라 일컬었다. 642년 친히 신라를 공격하여 미후성(獼猴城) 등 40여 성을 빼앗았고, 이어 윤충(允忠)으로 대야성(大耶城:경남 합천)을 함락시켜 성주인 품석(品釋)을 죽이는 등 신라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듬해에도 당항성(黨項城:남양)을 빼앗아 신라가 당(唐)나라로 가는 입조(入朝)의 길을 막는 등 국위의 만회에 힘썼다.

 

 

 

2.개인적 의견

 

고구려에대해 여러 드라마,영화도 봤지만

우리나라 역사중에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질수 있었던 대업을 이룬 시대로서

그들의 패기와 용맹함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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