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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5 19:46
영화 '노량'은 첫번째 영회 '명량' 보다 한 수 아래이다. 비장함과 똘끼는 최민식을 따라가지 못했다.
또한 너무 과도한 CG는 사실적이지 않고 만화 같아 몰입하는데 상당히 방해가 되었다.
이순신 장군의 전투일지나 전투 뒷배경과 히든 스토리를 모르면 따라가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이순신 역의 김윤식도 너무 점잖아 맞지 않은 옷을 입은듯 하다.
역시 군바리와 전쟁영화를 싫어하는 여성들과 같이 보는 것도 부담스럽다. ㅋ
그러나 킬링타임용으로 추천. 나중 동료들 모임에서 소외될 수도 있으니,,,,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순신이 스나이퍼들이 드글거리는 적전 앞에서
화려한 갑옷투구 입고 북을 쳐대는데 죽을려고 환장한거로 밖에 안보이더군요.
역사적 고증을 제대로 검증하고 제작했는지 의문이 가는데 알고도 했는지
모르고 했는지 의문이 들더군요. 그런데 이순신이 전사보다는 자살로 볼 수 밖에
없는 몇가지 이유들을 알아보겠습니다.
☆ 이순신이 전사 보다는 자살이라는 근거
1. 믿고 의지했던 어머니가 이순신 보러 오던 중 태안 앞바다 배에서사망,
1597년(이순신 사망 1년전) 아들 중 젤 사랑한 셋째 아들 면이
왜군들에 의해 도륙(사지 완전 절단 당하여 비참하게 죽음)
ㅇ 명량에서 이순신에 의해 패배한 분풀이로 왜놈들 아산까지 가서 죽임
ㅇ 이순신 이때부터 완전 멘탈 나감
2. 연이은 전투로 잦은 부상 및 치명적인 부상 심각
ㅇ 특히 등에 화살을 맞아 피고름이 줄줄 계속 새고 있었다. 지금이야 항생제 투여나
외과수술로 처치하면 되지만 당시에 해초물 등 민간요법, 한약 등으로 치료했지만
상처가 덧나기만 해서 고통스러워 삶의 질이 말이 아니었다.
- 이순신 사망 당시 1598년 54세로 당시 평균 생존 연령이 35세 미만 이었음을 감안하면
현재 나이 85세 정도로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하였다.
3. 부하들의 수많은 죽음
ㅇ 많은 전투에서 장수(장교) 및 병졸들이 처참한 죽음을 목도한 그로서는
그들에게 많은 죄를 지었다고 자기도 언젠가는 아니 빨리 저들처럼 가고
싶다고 주변에 자주 말하곤 했다. 그 당시 전쟁터에서 부상은 너무 처참했다.
화살에 눈을 맞고 칼로 팔, 다리가 잘라지고 창에 목을 찔려 피가 계속 솓구치면
그냥 볼 수 밖에 없었다. 고통속에 죽었고 평생 고통스럽게 살았다.
즉사하는게 백번 나았다. 사랑하는 수군절도사 이억기, 원수같았던 원균 마저
다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4. 선조한테 존나 찍힘
ㅇ 이순신은 상관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왕의 명령 즉 어명도 본인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거부하였다. 선조는 몇번씩이나 대놓고 이순신을
고문하고 좌천시켰다. 죽기 얼마전 스파이의 계략에 의해 카토 기요마사
라는 거물급 장군을 생포하라고 명령을 내렸으나 이순신은 듣지 않았다.
그때 속좁은 선조는 이순시 이새키 전쟁만 끝나봐라! 너 죽었어!
(나중에 선조가 속을걸로 판명됨)
5. 큰공 세운 사람들이 역적으로 몰린 케이스가 많음
ㅇ 의병으로 큰 공을 세운 김덕령이 역적의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했다.
같은 의병장 이었던 조식의 사위 곽재우는 야인이 되어 멸문지화(온 가족
씨를 말림)를 면했다.
- 이순신 참모였던 유형이 쓴 이순신 행장에는 '큰공을 세운 장수가 공에 맞는
대우를 받으려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 적이 물러날때 죽어야만 유감이
없을 것이다.' 라고 순신이 말하곤 했다 한다.
6. 이순신의 반란 가능성
ㅇ 참으로 상상하기조차 싫은데 속좁은 꼰대 선조 이 인간은 이순신이 전군의 절반이 넘는
군사를 지휘하는 위치에 있었고 부하들이 그를 잘따라 이순신이 반란을
일으키면 자기가 완전 아웃된다고 생각하였다.
- 이순신은 전쟁 종료 후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7. 명나라 장군 진린 증언
ㅇ 진린은 우리의 선입관과 달리 중국에서 유명하고 용감한 장수이다.
당시 명나라 황제도 그를 무척 신임했다하며 믿는 그를 조선전쟁에 즉시
투입하였다.(투입 당시 명나라 지방에서 반란군 소탕중이었음)
처음에는 이순신을 깔보았으나 이순신의 기개 특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쟁중 초연히 죽겠다는 말을 담담히 자주 말했다 한다.
- 진린은 초급장교가 아닌 통제사 장군이 그런말을 하여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명나라 황제에게 고함
8. 치열한 전투중 대장군이 나댐
ㅇ 노량 전투에서 대장선에 대장군 깃발을 꽂아놓고 지휘한다. 잘 알다시피
최고위 군장교 특히 대장군은 앞에서 직접 진두지휘 하지는 않는다.
(군에서 지휘관에게 장총이 아닌 권총을 지급하는 것은 적병 근접시 호신용과
최후 자결용임). 왜냐하면 적장의 죽음 그 전투의 패배로 직결될 수 있기에
되도록 전면에 안나온다.
ㅇ 영화 노량에서 이순신이 북을 치는 장면이 계속 나오는데 논센스이다.
기분 나쁜 장면이고 김한민 감독이 오버해도 너무한 감이 있다.
선조실록, 징비록, 일본 사서에도 그런 문구는 어디에도 없다.
징비록에 따르면 '이순신이 군사들을 독려하며 전면에 나서 활시위를
당기며 지휘하다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 로 묘사되었다.
- 어쨋든 이순신은 평상시 다른 전투와 달리 전투 전면에 자기를 노출하여 화를 자초하였다.
Sniper(저격수)를 잘 활용하고 훈련이 잘 된 나라들이 바로 몽고, 러시아, 독일,
그리고 일본이다. 일본 스나이퍼들이 앞에서 화려한 장군 갑옷투구 입고 나대는
이순신을 가만둘리 없다.
- 영화속에서 북을 치는 사람은 조카 이완 이라는 설이 있으며 밑에 부하장교가
전투 독려를 위하여 대신 계속 쳤다고 전해진다.
- 영화에서 겨드랑이에 총탄을 맞은 것으로 되어있으나 실록과 징비록에서는
가슴에 총탄을 맞은 것으로 되어있다. 이순신이 아들 회와 조카 완에게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모든 실록 정,야사에 정확히 일치하며,
이 또한 자기의 죽음을 대비한 멘트 아니었을까!!
**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회원님들이 당시 이순신 이였다면 살려고 했을까요 전투 중 죽음을 택했을까요?
**** 참고로 저는 정치에 관심이 없고 지지하는 정당 또한 없습니다.
조국을 위해 장렬하게 산화하신 분들(거북선에서 노젖다 고통속에서 사라져간 민초들,
의병들, 독립투사, 전몰장병, 소방관들) 등을 항상 리스펙 합니다.
떡치는 것과 역사를 조아하는 사람이니 정치적인 댓글 지양하였으면 합니당~^^
자살설은 말이 일단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게 이순신장군이 노량에서 전사했기때문에 노량해전이 마지막 전투가 된거지 살아 있었으면 계속 왜군과 전투했을거임 일단 장군 마인드자체가 한놈도 살려보내지 않겠다는거임 그런분이 왜군이 아직 있는데 자살한다? 말이 안됨 거기다 뭐 선조가 전쟁이 끝나면 날 살려두지 않을거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도 말이 안되는게 선조는 전쟁이 끝나도 절대 이순신을 어찌하지 못함 선조는 모든 방면에 무능했지만 방계출신 최초의 왕인 자신의 컴플렉스를 붕당을 이용해서 조정을 장악했을정도로 정무적 감각은 뛰어났는데 친명사대의 유교의 국가에서 선조마저 함부러 대하던 명장수 진린도 이순신은 좋아했음 명나라 황제에게 당장 왜 와의 전쟁이 끝나면 이순신을 차출해서 요동 청나라와의 전쟁에 투입해야 된다고 장계를 올릴정도였고 진린이 줬니 황제가 줬니 말은 많지만 팔사품까지 받은 이순신을 선조가 역모로 몬다? 명과의 관계 + 친명사대의 모든 사대부가 붕당을 초월해서 들고 일어날 일임 그런 정치적 자충수를 절대 선조 같이 정무감각이 발달한 자가 할리가 없음 그정도 감각이면 애저녁에 이미 폐위 됐었음 출신적 한계 전란을 겪고도 죽을 때 까지 왕좌를 지킨 선조가 그정도로 정무적 관점에서 바보는 아님 아예 진짜 싫어해서 살려 두기 싫었다면 역모로 몰아서 죽이기 보다는 아예 암살 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음 거기다 앞에서 뭐 북을 친다고 쉽게 말해서 자살을 유도 한다고 총에 맞는다는 보장이 없음 조총사거리가 50m정도 뿐이 안되는데 거기다 배위에서 쏘면 유효사거리는 훨씬 짧아지는데 이순신 장군처럼 확실하지 않으면 어명도 거부하던 철저한 사람이 자신의 자살을 위해 그런 불확실한 계획을 실행 할리가 없음 자살이라면 쫌 더 확실하고 확률 높은 계획으로 죽었을거임 실제로 노량해전 당시 대장선에 탔던 무장들을 보면 다른 사람은 전부 이순신장군과 전투를 오래했던 수족들인데 항왜 한명이 특이하게 있음 아예 선조가 전투 중 사망처럼 꾸며 암살을 했다면 모를까 자살은 정말 가능성이 거의 생존설 만큼 희박하다고 보여짐
님의 의견 존중합니다. 그러나 님이 말한건 전쟁 종료 후 미래에 일어날 개연성을 긍정적인 측면에서 논리를
전개한거고 당시 이순신은 심각했습니다. 특히 멘탈이.. 상기 언급한 1번, 2번, 3번에 의하여
정신적으로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수많은 전투와 전투전 심한 스트레스와 전투후
트라우마로 정신적으로 황폐화되고 있었습니다. 난중일기에 본인의 스트레스를 자주 언급한
대목이 많이 보입니다. 물론 몸의 상태도 말이 아니었구요. 언급하였듯이 그시대 완전 노인이었습니다.
그 나이때 수많은 전투에 살아 있는게 기적입니다. 님의 말은 명나라 와의 관계에 있어 속국 조선과의 관계를
얘기했던거구 진린이 떠난 후 미래에 이순신을 선조가 어떠하게 처리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님이 말했던 것처럼 선조의 천부적인 정무적 감각이 모사를 꾸며 거꾸로 이순신에게 사약을
내릴 수도 있고요. 선조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또라이 기질의 사내입니다. 분조로 친아들 광해 마저 임진왜란때
실컷 부려먹구 전쟁후 너는 세자가 아니니 나가라 할 정도로 이기적이고 못된 인간이었습니다.
이순신은 그당시 그냥 하루하루가 힘들었구요.
그래서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이 멘탈이 나가서 적군앞에서 북을 쳐 스스로 전투중
사망을 초래한 것으로 암시하고 있는것이구요.
저도 군대에서 힘든 훈련을 많이 했는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
4주차 즈음에 행군시 지나가는 차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생기더군요. 힘들면
생에 대한 애착이 없어져요. 영화나 책에서 보는 여유와는 거리가 멀어요.
자살설은 2010년부터 역사학과 교수들 심포지움과 학회에서 꾸준히 논의되었으며
최근 자살설이 힘을 많이 얻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 하나! 이순신 장군은 거리가 멀던 가깝던, 왜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습니다.
진린이 떠나던 말던 이미 정유재란때 부터 조선은 사대교린 보다 어마 어마한 재조지은이 조선 사대부들을 관통하고 있었음 전쟁영웅이었던 광해군조차 폐위되는 명분에 포함될 만큼 명에 대한 사대는 붕당을 초월한 가치였음. 실제로 광해군 집권 세력이였던 대북조차 인목대비문제나 영창대군문제는 광해군 편을 들어도 명의 파병요청거부는 광해군의견을 대놓고 반대했었음. 곽재우정도도 전쟁영웅이라고 죽이지못하고 유배선에 마무리 했던 선조가 이순신을 역적으로 죽인다? 이순신은그당시 명 황실에 까지 알려진 인사였음. 말씀하신대로 자신이 그토록 왕위를 넘겨 주기 싫어한 광해군조차 괴롭힐 뿐 세자 자리에서 폐위 못한거 처럼 적어도 감정으로 정치적 자충수를 두는 인물이 선조는 절대로 아님 거기다 선조에게는 전후에 그만한 권위도 없었음 물론 이순신의 영향력을 두려워 해서 바로 실권을 뺏고 명예직에 두거나 안그래도 진린 조차 이순신을 차출해야 된다 했으니 명에 파견 보낸다던지 그러한 수는 쓸 수 있다 손 치더라도 어떻게 처리 할지 몰랐다 긍정적인인 측면으로 본다? 이것은 진짜 그냥 소설수준의 상상임. 전쟁영웅 + 명황실의 신임을 보면 광해군 이순신이 투톱이지만 굳이 따지면 이순신이 더 높았음. 그런데 명황실의 고명조차 못받고 있던 광해군도 그냥 괴롭힌다 수준에서 끝나고 그 괴롭히는것도 사실 인조가 소현세자나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했던거에 비하면 심하다고 할수도 없는 수준이였고 정식적인 폐위는 엄두도 못냈던 선조가 아 모르겠고 이순신은 내가 싫어하니 모사로 죽이겠다 선조는 절대 그럴 위인도 못 될뿐더러 선조에게는 그만한 힘이 없었음 무엇보다 선조는 그런부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알고 빠삭한 인물이였음
극심한 트라우마나 스트레스는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늘 초인적인 판단력과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줬고 그것에 대한 원동력을 장군조차 왜군에 대한 적개심으로 들고 있는데 그런 왜군을 놔두고 자살이나 죽음을 생각한다? 절대로 불가능한 말임 전후에 의문사하셨다면 자신을 버티게 하던 원동력이 사라져서 그렇다고 할수도 있지만 논리적으로 맞지않음 거기다 아직 전투가 한창중이고 병사한명의 목숨조차 귀하게 여기시던 장군이 전투중에 지휘관이 사망한다는건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아는 분이 그런 행동이나 생각을 한다? 남긴 말만 보더라도 비약임 백번양보해서 만약 뭐 노량해전이 부산포에서 벌어졌다면 그래 이제 마지막 전투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노량은 당시로 보면 전란의 마지막이 절대로 아님 자살설이 어떤 학자나 심포지엄에서 꾸준히 논의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잠깐 나오고 그다음 부터는 도리어 이순신장군의 지휘관으로써 사명 왜군에 대한 적개심등을 폄하하는거라고 소설 수준으로 치부되는걸로 알고 있음 그리고 범인의 정신력이랑 그분의 정신력을 단순 비교하는건 매우 부적절함 그정도 수준에서 한참 넘어서신분이니 그러한 일들을 하고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분이신거임
그냥 결론적으로 선조가 전후에 이순신이 살아 있으면 역모로 죽였을 수도 있다는 가정은 현재로 봤을때 6.25직후에 미국 2개사단 규모정도를 구하고 6.25때 북한군 중공군을 혼자 박살내고 백악관까지 초청받아서 외국군인 최초로 메달오브아머를 받고 미국의 다른전쟁에 지휘관으로 파견해야된다는 장군을 쿠테타 혐의로 사형하는거보다 더 현실성이 없음
실제로 조금 과장 더 보태서 만약에 이순신 장군이 살아 있었고 실제로 역모를 일으켰다가 실패 했어도 태종 때 조사의의 난처럼 그냥 밑에 지휘관중에 한명한테 다 덮어씌우고 이순신은 살릴 수밖에 없었을 수준임
님이 주장하는 거는 다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이죠. 역사는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것을 논하는
학문입니다. 미래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정답 아니 진리로 간주하는 것 또한 역사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지금 언급한 것은 개연성 입니다. 김한민 감독이 만든 노량도 일부는 팩트, 일부는
허구입니다. 제가 지적하였듯 북치다 사망한거는 말도 안되는 조작이죠. 한국동란 까지 이어지는
님의 의견에 하나하나 반박하고 싶으나 개연성을 두고 왈가왈부 하는것 자체가 유치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소모전인듯 하여 자제합니다. 예를들면 보통 사람의 정신력과 이장군의 정신력을 비교할
수 없다하나 당시 이장군은 정말 사랑했던 친자식과 그토록 믿고 의지했던 어머니의 죽음 등
범인이 간과할 수 있는 죽음을 거꾸로 위인이기에 지나치지 못하고 사무치게 아쉬워하며
멘탈이 무너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건 김한민 감독과 동감하는 부분이고요.
한쪽만 보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건 역사입니다.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일을 분석할 수는 있어도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추정하는 것은 소설 일 수 밖에 없습니다.
미래에 일어날 수있는 가정이 아니라 그시대 조선에 대한 상황적 판단을 말하는 겁니다. 자살설의 근거로 내세운 4.5.6은 그냥 말도 안되는 소설 수준의 이야기고 개연성이 라는게 없음
이순신장군이 아 내가 역적으로 몰려 죽을 수도 있겠구나 라든지 선조가 아 점마 맘에 안드니 전쟁끝나면 없애야지 이런건 정말 1차원적인 왕은 마음대로 하는 사람 조선과 명의 관계는 그냥 뭐 큰나라 작은 나라 사대부는 그냥 그때 관리 이런수준의 그냥 단순한 봉건제적 이해에서 나온 상상임 이순신장군이 위협을 느낄 상황도 아니였고 선조가 죽일 수있는 상황도 아니였음 도리어 전후에 살아계셨다면 장군이 다른걸로라도 죽으면 안되는데 선조가 걱정에 살판이였음. 자살의 동기가 없는데 자살설이니 뭐니 하는게 상상임 워낙 돌아가신거 자체가 미스테리해서 그런 상상은 할 수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차원이고 학계에서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음 전후 조선과 명의 관계 지금 한국과 미국의 관계 선조 이순신 박정희 김대중 위상을 봐도 이순신과 명의 위상이나 영향력이 절대적이였는데 그런 김대중조차 미국에서 압력넣으니 현해탄에서 죽일려다 실패한 박정희인데 선조가 이순신을 죽인다? 절대로 불가능한 상황 판단임 판단을 미래에 대한 가정이라고 하고 논거에 대한 반박을 아 뭐 미래니깐 모르잖아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뭐 내일 해가 안뜰 수도 있다 이런거랑 비슷한이야기임 내일이 안왔는데 뜬다고 단정 지을 수 있어요 하는거임 해가 뜬다고 단정짓는게 아니라 해가 안뜬다는 그 근거가 말이 안된다는거임 그걸 뭐 미래니 알 수 없지 이럴거면 자살설이니 거기에 대한 근거니 하지마시고 그냥 난 자살이였으면 한다라고 상상해본다 난 자살설 좋아 재밌잖아 아예 이게 맞음
김대중과 미국과의 관계와 이순신과 명의 관계 정도는 비교가 안되지요.
70년대라 해도 그때의 통신수단과 16세기의 통신망과 전달체계가 비교를 할 수 있나요?
그리고 미국은 김대중을 박정희의 대항마로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꼭 필요한 사람으로
살려야만 했습니다. 그와 반대로 당시 명은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 현재 금액으로 약 2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자금을 투자하여 조선을 도와주러 파병하여 열받아 죽을 지경인데 명황제와 조정이 이순신을
적극 보호할 마음이 있었을까요. 명은 자기 간수도 못할 정도로 청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어요.
자꾸 명의 후광을 얘기하는데 당시 명은 기울어져는 나라이고 진린도 10년 정도 후에
사망합니다. 진린도 자기 앞가림 하기 바뻤고 종전 얼마후 건강도 안좋아집니다.
지금처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아 상황을 알리는데 한 달 이상씩 걸리구요.
즉, 이순신을 거둬 강하게 백업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얼마후 명이 멸망하고 아들은 청군과 싸우다 죽고 손자가 조선으로 겨우 도망 나왔습니다.
미국을 비교하는 것은 상당히 오버하는거구요.
그리고 중요한 것 하나!! 진린이 지금까지 거만하고 거드름 피우는 명나라 장수로 평가절하된
사유는 당시 진린이 이순신을 칭찬하자 선조와 서인들이 기분나뻐하며 작정하고
진린에 대한 평가를 야박하게 하고 좋지않은 평판을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선조실록에도 탐탁치 않게 평가되었구요.
그정도로 선조는 영악하고 차가운 인물이에요. 선조는 자기가 맘에 안드는 놈은 꼭 제거하고자 하는
속좁은 인간으로 대의 보다는 당파와 자기위주의 여론을 조성해서
보기싫은 놈을 제거하고자 하는 집요함 있는 사람이에요. 선조가 영리하다는 것은 님과 동감하지만
선조의 그런 영악함이 대국적인 관점에서 그림을 그려가며 펼치는 외교와 정무감각은 부족합니다.
광해가 오히려 외교감각이 한 수 이라고 보입니다.
당시 상황에 진린과 명 때문에 이순신이 철벽 방호를 받는다는 결정적인 증거와
배경은 없습니다. 님처럼 그럴 수 있다는 추측과 추정뿐이구요.
지금 현대인의 가치관과 생각으로 단편적으로 보니 그당시 사대의 개념이나 유학자들의 지조재은이나 이런 의미를 알지 못하는거 같음 명이 기울어 지던 망하던 그런건 지조재은의 사대부들에게 중요한게 아니였음 그냥 명은 그 당시 사대부들에게 태양과같은 존재임 님이 외교관계 잘한다고 하는 광해군조차 광해군때면 명의 국운이 선조때보다도 더 기울었을 그때 조차모문룡한테 매년10만석씩 쌀을 주고 가도에 있으면서 온갖 패악질을 부려도 손도 못대고 있었음 인조는 뭐 더 할말도 없고 일개 명나라 패잔병도 명나라라는 후광에 붕당을 초월한 대신들이 들고 일어나서 손을 못댈 수준이였고 진린은 뭐 선조한테 관리 패고 끌고 다니고 해도 선조는 말한마디 못하고 그냥 보고 직접 도성에서 나와 배웅하고 하는 수준임 지금으로 치면 주한 미8군사령관이 우리나라 대통령앞에서 외교부직원 폭행하고 탱크에 매달고 돌아다니는데 대통령은 물론 야당 여당 언론 모두 그럴 수 있지 어쩌겠어 하는게 그당시 조선 사대부들에게 명의 위상임 상상이나 됨? 현재 사고방식으로? 이순신을 죽였다? 명에서 알았다? 뭐 이순신을 얼마나 보호하냐 마냐 그런문제가 아님 실제로 그리고 선조가 전후에 자기가 맘에 안들어서 죽인 인간해야봐야 급이 어느정도 되는 사람 아무도 없음 그정도 실권이 없었기 때문에 곽재우정도도 역모 투서가 있어도 그냥 불문에 부치고 곽재우는 대놓고 왕명에 항명하는데도 그냥 유아무야 끝내버리고 광해군은 뭐 어찌 손대지도 못할정도로 권위가 없는데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같은 서자로 전쟁영웅 출신인 광해군 조차 사대의 예를 다하지 않았다고 쫓겨나는 수준에서 거기다 폐모살제는 대북도 지지했었음 근대 사대를 저버린건 대북도 지지를 못함 유교의 국가에서 부모를 폐하고 형제를 죽인것보다 사대 안한거에 온나라가 반대했다는 말임 그런 상황인 조선에서 선조가 명이 뭐 망해가는데 어쩌겟어 하고 일을 벌린다? 진짜 그냥 상상이하도 이상도 아님 애시당초 이순신 잡아들이지도 못하겠지만 잡아들여서 뭐 직접죽일거임? 아무도 안움직이는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함 현대인의 시각으로 역사를 볼려면 그시대에 대한 이해가 밑바탕에 있어야 됨 그냥 단순히 왕조시대 뭐 이러고 개별사건을 본다 이상하게 보기 시작하는거임 단편적인 예로 조선시대 위패 신주 조상 묘와 관련해서 살인사건이 얼마나 많은지 앎?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에이 뭐 평소에 사이가 안좋거나 뒤에 숨겨진 금전관계나 뭐가 있겟지 단지 신주 같은걸로 사람을 죽인다고? 그것도 한두명도 아니고 그러면서 뭐 금전관계 음모론을 꺼내는거임 근데 그 당시로는 전혀 이상할게 없는 그럴 수도 있는 그런거임 거기다가 뭐 지금 처럼 통신이 없으니 명이 알기전에 잡아 죽이면 된다? 선조가 직접가서 잡아와서 직접죽일거임? 그 당시 국문을 열자할수도 없고 해봤자 들을 사람도 없음 그리고 진린과 명 이 이순신을 철벽방호 했다는 결정적 증거가 없다? 실록에도 나와 있지만 이순신이 명나라로 부터 도독을 제수 받았다 이런이야기가 있음 실록에는 헛소문이다 이러지만 사실이던 아니던 이미 그당시 백성들에게 이순신이 명나라 관직을 받았다.라는게 정설처럼 퍼져 있었다는거임 거기다 그래 선조에게 조차 막대하고 난장판이던 진린이 이순신을 아야 노야로 극존칭으로 대함 이순신은 반대로 진린을 부군 즉 친구라고 부름 뇌물이나 뭐 이순신이 진린에게 수급이나 전공을 양보해서 그랬다라고 하면 내밑에 사람이 아무리 대한테 잘한다고 해도 그사람을 극존칭으로 부름? 거기다 반대로 밑에 사람이 내가 잘해주니 위에 사람을 어이 친구야 이래 부름? 진린뿐 아니라 양호 형개등 그당시 명관리들도 이순신을 극존칭으로 대함. 이런 사람을 선조조차 명나라관직으로는 정1품 뿐이 안되는데 지맘대로 잡아죽인다? 그럴 수 있었음 그전에 전후에 진린이나 다른 장수들이 면전에 그 난동을 피울때 말이라도 한마디 하는게 맞음. 뒤에서 뭐 궁시렁 궁시렁 거리고 할수는 있어도 절대로 뭐 정식적으로 잡아들인다 죽인다 이런건 애초에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말임. 팔사품은 뭐 요즘 논란이 많으니 차처에 두고 팔사품 조차 우리나라 문화재청에서는 아직까지도 명황제가 줬다고 하는데 거긴 도독인도 포함되어 있음. 그렇다면 명나라 도독이면 명나라 관직으로 정1품인데 그런사람을 같은 정1품인 조선국왕이 잡아다 죽였다? 나라가 기울었던 뭐든 뭐 이뻐했던 안했던 그런 문제가 아니라 명뿐만 아니라 지조재은에 미쳐있던 조선에서 절대로 벌어 질 수 없는 일임 전후에 광해군이 전쟁영웅으로 부각되고 권위가 실추 되던 선조 입장에서야 어떻게든 이순신이 살아있었음 잘지내서 선전하는게 훨씬 자신에게 이득이지 아 싫어하니깐 죽이자? 선조가 그 정도였으면 다시한번 말하지만 애시당초 쫓겨났음. 그리고 이순신장군조차 복직하고 나서는 망궐례를 안올림 무슨이야기냐면 그냥 선조를 쌩가고 있었음 그런 사람이 아 전쟁끝나면 날 역적으로 몰아죽이면 어쩌지? 걱정하고 그러니 내가 전쟁끝나기전에 죽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족이라도 살린다? 신경도 안 썻을거라고 봄
하! 님의 글을 다 읽으며 반박하고 논쟁할 시간적 여유가 없군요.
그런데 님의 글을 보면 역사를 팩트 보다는 그 당시 상황에 억지로
꿰어 맞추려하는 느낌인데 잘 안맞는 느낌! 다 추정이고 그럴 것이다 라며
강요하시는데 저게 다 팩트이고 사실 인가요?
역사에 대한 해석 치곤 너무 무리수가 따르는군요.
보아하니 님은 연세가 있으시고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듯 한데
나는 전혀 그럴 여유가 없네요. 지금 미팅 끝나고 공항에서 출국해야해
더 이상 논쟁 못하네요. 급히 읽어본 내용 중 조선 국왕이 죽였다?.
어쩌지? 신경도 안 썼을거라 고 봄 등 문구를 보니 드라마 작가적인
상상으로 상대방에게 논리를 강요하시는 군요. 상상과 추측, 추정이 아닌
정확한 팩트에 입각해 논리를 전개하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순신 자살설은 하나의 학설이지 정설이나 진실이 아님을
다 알지 않나요? 그러나 자살설에 대하여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그 결론이 노량 이라는 영화가 나온거구요
그런 자살 근거를 하나 하나 한번 까보고 접근하자는데 그 시대 상황에
억지로 꿰어 맞추려니 님의 논점이 자꾸 흐려지는 것입니다. ㅠ
다 실록에 있는내용입니다 ^^ 팩트 좋아하시는거 같아서 팔사품정도는 문화재청에서도 인정하지만 요즘들어 진짜 학계에서 논란이니 논란이라고 해뒀습니다.
물음표 한건 진짜 안읽어 보셨나본데 ㅎ님의 주장을 반박하는 님의주장의 요지입니다.
자살설은 학계에서 학설수준도 아니고 그냥 풍문에 음모론수준에 이야기죠 지구 평평설이 지구과학 학계에서 논의되는 학설이 아니라 그냥 가십성수준인거 처럼요
영화나 사극에서 그렇게 많이 그려지는건 전형적으로 영화적 임팩트를 위한 거지 대표적으로 이순신장군이 파직 되어서 형신 받을때 무슨 곤장맞고 주리틀고 고문받는거 처럼 나오는거 같이 그냥 영화적으로 가장 극적이라 그렇게 하는거지 저게 무슨 큰 팩트에 기반하고 학설이 있고 한 수준이 아님 논문이나 주장하는 학자도 만무하고 도리어 시중에 퍼져있는 자살설을 반박하는 논문이 쏟아져 나오는 수준임 애초에 자살설 시작이 김덕령평전에 나오는 면주 그 두글자 때문이였는데 갑옷을 벗고 나섰다 이말 때문에 죽을려고 했던거 아니냐 이렇게 풍문이 돈건데 면주라는 말자체가 죽음을 불사하고 싸운다 이런 그당시의 관용적표현이었음
애초에 선조가 뭐 공이 많은 자들을 시기질투해서 역적으로 몰아 죽였다라는 거 자체가 그냥 역사적 상상이고 그냥 일반인들에게 잘못알려진거임 더 급진적인 학자들은 식민사관의 일종이다 이러기도 하는 내용임. 전후에 역적으로 죽은 의병장이 둘인데 김덕령 이산겸둘인데 뭐 이산겸은 아예 이름도 모르실거고 김덕령도 곽재우급도 안됐음 당연 곽재우도 저기 연류되었다는 말이 있었지만 선조는 곽재우도 불문에 붙힘 그런데 권율 김시민 이순신은 임진왜란 탑3고 그중에서 이순신이 탑인데 애시당초 전후에 선조의 권위로 건들일 수 있는 급이 아님. 그냥 당쟁을 과장하고 전쟁영웅도 맘대로 죽이고 하던 미친 조선이다 뭐 이런 뉘앙스의 개념임 뭐 이순신 장군 본인의 애민 왜군에 대한 적개심 정신력 이런건 더 말할 필요도 없고 그냥 자살을 생각 할사람도 동기도 두려울 상황도 아니였다. 이거임
영화에 나오는 대사중... 모두들 전쟁이후만 생각한다는 대목이 있어요.
전쟁 결말의 내용도 고민하셨겠지만.... 이순신장군 역시 전쟁이후도 생각 하셨을 듯.
죽고자 하면 살고... 이 생각을 명량에서만 하신건 아닐듯요.
이순신 장군의 전쟁이후는 죽음 이외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수도...
영화의 마지막 20분정도 머리와 가슴을 울리는 북소리... 왜놈들의 공격에도 계속 울리는 북소리에서... 이순신 장군이 결심한 선택이 뭔지 확실히 보였어요.
이 노량에서 죽어야... 산다는걸...
정치색 빼고 국뽕에 취해서 본 저의 영화평입니다.
시마즈가 충무공보다는 명나라 진린쪽으로 총공격해서 관음포에서 빠져 나가려 하니 이에 위급해진 진린을 구하려다 총탄에 맞았다고 예전에 배웠는데 어느 시점부터 자살설이 대세로 굳어지는 분위기로....충무공이 노량에서 작살낸 시마즈 영화에서는 무사히 돌아간거처럼 보이지만 남해 미조에서 층무공의 매복에 걸려 고니시도 겨우 살아 간걸로 아는데.....이둘이 히데요시 아들 히데요리측 주력 다이묘들 애들이 작살나니 세기히가라 전투에서 도쿠가와가 크게 득을 본듯....도쿠가와는 충무공한테 큰절을 해야 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