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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5 15:17
해태의 최전성기를 이끈 주역중
김성한과 함께 레전드로 평가 받는 선수가 있습니다.
대전고 시절 유격수와 투수로 활약하며
동국대학교로 진학 후
1년 선배 였던 김성한 선수와
동국대를 대학야구 강팀 반열에 올려 놓았던
야신 한대화 선수이자 전 한화이글스 감독입니다.
한대화 선수는 대학교 4학년인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 야구선수권 대회 국가대표 5번타자로 (4번타자 장효조)
일본과의 최종전 에서 8회말 동점 상황에서 투아웃때
왼쪽 폴대를 강타하는 결승 3점 홈런으로
한국 야구 사상 2번째 세계 대회 우승을
이룩하는 데 1등 공신이 됩니다.
그리고 졸업후 당시 대전이 연고이던
OB 베어스에 입단하며
프로생활을 시작하지만 간염이 발병해
출전기회가 줄어들고
입지가 줄어들고 있던차에
당시 감독이였던
훈련많기로 유명한 김성근 감독에 눈 밖에 나게 되어
1986년 시즌을 앞두고
트레이드로 해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게 됩니다.
김응용 감독은 간염으로 체력이 많이 떨어진 한대화 선수에게
오후에 느지막히 운동장으로 출근하도록 지시하고
항상 늦잠과 낮잠을 자게하며 경기 후
몸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합니다.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주전 3루수로 활약하며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리그를 대표하는 타자이자 3루수로 평가받으며
김성한, 이순철과 함께 당대 최강의 타선을 이루며
1986년 이후 해태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6회 우승에 큰 기여를 합니다.
하지만 1993년 올스타전 때
김응룡 감독과 서로 오해가 생겨
1994년 LG로 트레이드가 됩니다.
한대화는 LG 트윈스에서 팀의 4번타자를 맡으며
신바람 야구의 한 축으로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1996 시즌 은퇴를 권유하던
LG트윈스를 떠나 쌍방울 레이더스에 트레이드가 됩니다.
하지만 당시 감독이 또 하필
김성근 감독이라 시즌 중 은퇴를 하게 됩니다.
쌍방울 레이더스는 구단에 기여한 바와는 관계 없이
리그 역사에 빛나는 명 3루수인 한대화에게
은퇴식을 준비해 주려 했으나
김성근 감독의 만류로
은퇴식 없이 임의탈퇴가 되면서 그라운드를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듬해 모교인 동국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박한이, 박정권, 유한준, 등 뛰어난 타자들을 양성합니다.
그후 2004년 시즌
삼성 선동열 감독이 부임 하면서
타격코치로 삼성의 부름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삼성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으며
2009년 고향팀 한화이글스의 감독으로 부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야왕이라 불리며
2011시즌 탈꼴찌를 하며 한화가 6위를 달성하게 됩니다.
부임했던 기간동안 특별한 업적은 없지만
최진행, 김혁민의 성장을 도왔습니다.
당시 워낙 한화그룹이 야구단에 투자를 안했던 시기라
답이 안나왔던 한화이글스를 6위까지 기록하자
대단하다는 여론이 많았었습니다.
그리고 성격이 상당히 순하고 유들유들해서
당시 팀분위기는 위계 없이 사이가 굉장히 편안했고
선수들이 개인적인 고민토론을 동료선수 코치가 아닌
감독에게 찾아와서
면담을 할 정도로 선수들과 감독간의 신뢰감이
돈독했었다고 합니다.
그후 한화 감독 퇴임후
기아 2군 감독으로 현장으로 복귀 하게 되고
2013년 부터는 1군 수석 코치를 맡은 후
2014년 선동열 감독이 사퇴하자 동반 사퇴를 하게 됩니다.
한대화 짱이었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