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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6 12:44
타이거즈 최전성기 시절
왕조를 이룩한 해태 타이거즈의
1번타자는 해태에서만
우승을 8차례에 했으며
세 번의 도루왕과
네 번의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던 정말 뛰어난 호타준족의 선수였습니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입단시즌인 1985년도에는
0.304의 타율과 12홈런 31도루라는
당시기준으로는 쇼킹한 성적으로
타이거즈 역사상 최초 신인왕을 수상합니다.
이기록은 2021년
이의리 선수가 신인왕을 수상하기 전까지
36년동안 타이거즈의 유일했던
신인왕 이였습니다.
바로 모두까기 이순철 선수 입니다.
해태 타이거즈의 3루로 입단해
3루 골든글러브를 수상 하지만
그해 국가대표 3루수 출신인 한대화 선수가
OB에서 해태로 트레이드되어 영입되자
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하게 됩니다.
포지션 변경 후 에도
14홈런 19도루를 기록해
홈런 5위, 도루 7위에 오르며 외야에 안착하게 됩니다.
1988년도에는 58도루를 기록하는데
홈런도 8위에(13홈런)
오르는 뛰어난 타격실력을 뽑냄니다.
그리고 1992년 시즌에는 20홈런 20도루를 기록
152안타를 기록해 최다안타왕도 획득하나
그해 MVP는 41홈런을 기록한
장종훈 선수가 2년 연속 수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순철 선수도 1993 시즌부터
에이징 커브가 오기 시작하여
당시 입단 한 이종범 선수에게 점점 밀리고
1997년 방출될때 까지 2할 초반대의
타격을 기록하게 됩니다.
더욱이 그해 전지훈련에서
항명사건까지 생기고
김응용 감독 눈밖에 나게 됩니다.
그해 대학 최고 외야수로 이름을 날리던
김창희 선수가 입단하자
경기도 못나가게 되면서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탈락되고
시즌종료후 방출이 됩니다.
그리고 백업이 필요했던 삼성라이언즈가
그를 영입하나
타율 2할을 기록하고
1998년 플레이오프 경기를 끝으로 은퇴를 합니다.
은퇴후
삼성의 주루코치가 되어 좋은 평가를 받으며
코치생활을 하지만
2000년 시즌 후 본인을 방출시킨
김응용 김독이 삼성으로 부임하자
삼성을 떠나 LG트윈스로 이직을 합니다.
LG 선수들도
'편하면서 잘 가르쳐주는 코치'라면서 좋아했고
주루코치나 작전코치로서의
능력 또한 최상급이라는 평가를 받았 습니다.
코치 시절의 호평을 바탕으로
2003 시즌 종료 후 LG트윈스 감독으로
부임하지만
감독시절 평가는
LG팬들과 언론으로 부터
감독 취급은커녕 사람 취급도 못 받는
암적인 존재가 되버립니다.
이 시기로 인하여 이순철은 LG 트윈스의
영원한 금지어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야구선수, 코치, 해설분야에서
확실한 능력을 보여주었던 이순철이지만
아쉽게도 감독으로서의 역량은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수없다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이순철이 야구계에 큰 업적을
세운 인물임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 입니다.
김일권이죠
이순철이는 게임도 안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