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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4 00:18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까지
그 유명했던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짧은글 & 일반정보 -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인기팀. 다이나마이트 타선의 이글스
https://yt723.org/index.php?document_srl=81238852&mid=community2#comment_81241396
핵심 멤버이자
당대를 대표했던 교타자가 있습니다.
대구출신으로 대구상고를 졸업했으나
1987년 삼성라이온즈가 1차 지명으로 내야수
강기웅, 류중일을 지명 하게되자
2차 지명으로 밀리면서 빙그레 이글스가
2차 1순위로 이선수를 지명 합니다.
이 선수는 이글스 프랜차이즈 사상
최초의 신인왕이 되었고
악바리 근성으로 유명했던 이정훈 선수 입니다.
170cm 가 안되는 키로
1991년 17홈런, 1992년 25홈런을 기록할 정도로
장타력도 받쳐주던 편이였으며
1992년에는 20홈런-20도루를 달성 합니다.
그리고 1991년 , 1992년 두해연속 타격왕을
차지하였는데
이정훈 선수 이후로
이대호 선수가 2010~2011년
타격왕 2연패를 달성하기까지
20년동안 타격왕을 2연속으로 차지한
타자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1987년부터 1992년까지
5시즌 동안 외야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할 정도로
최고 전성기를 누렸고
국내 야구계를 대표하는 왼손 타자 중 하나였으나
온갖 잔부상에도
특유의 근성으로 출전을 강행하는 바람에
노쇠화가 급격히 찾아오게 됩니다.
1993시즌 손목부상을 시작으로
발목까지 안아픈 곳이 없었는데
1992년 3할6푼 이였던 타율은 2할로 떨어지고
선수 시절의 전성기 6시즌과
부상이후 5시즌의 기록이 같은 선수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딴판이 되버립니다.
속칭 "대포 주사"로 불리는
데포메드롤을 세 번이나 맞고 경기를 뛰었고
그 부작용은 은퇴할 때까지 고스란히 나타나
이정훈 선수 생명을 갉아먹었고
한 시대를 대표하는 교타자가
이렇게 한순간에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안타까운 점은 이 부상이
당시 미국이나 일본의료 수준으로는
수술 후 재활하면 완치가 가능한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1993 시즌부터 부상으로 입지가 좁아지고
1994년 시즌 후 삼성으로 트레이드가 되지만
별다른 활약없이
1996년 OB베어스로 이적후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방출당하며 은퇴 하게 됩니다.
은퇴후 에는 한화코치를 시작으로
LG트윈스 코치를 거쳐
현재는 두산베어스 2군 감독으로 있습니다.
현역시절 선동열을 상대로 엄청 강했는데
1989년 한국시리즈 때는 선동열을 상대로
9타수 5안타라는 어마무시한 기록을 찍기도 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했던 선수입니다. 제가 빙그레 처음부터 어린이 회원이었고... 아... 이정훈 이강돈 장종훈..... 특히 이정훈을 가장 좋아했고... 정말 타격 최고였죠. 실제 경기장에서 보면... 타구 자체가 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