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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4 18:11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를 풍미한
빙그레의 프렌차이즈 스타이며
깡통이라는 별명으로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선수가 있습니다.
이선수 역시 이정훈 선수와 같은
짧은글 & 일반정보 - 빙그레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핵심 멤버이자 당대를 대표했던 교타자
https://yt723.org/index.php?mid=community2&document_srl=81242700
대구상고 출신이였으며
졸업 후 건국대에 진학하고
실력이 일취월장하면서 84년 LA 올림픽
국가대표로 발탁되며
대학 무대 최고의 타자로 성장 합니다.
그리고 그를 지명할줄 알았던 삼성라이온즈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릅니다.
지명을 해놓고서는
먼저 군대를 갔다 오면
정식으로 입단시켜 주겠다고 한 것 입니다.
다른 선수에게는 관대하게 입단 조건을 걸고서
유독 자신만 군대를 걸고 넘어지는 것에 화가 난 선수는
빙그레와 입단 계약을 맺어 버립니다.
바로 빙그레의 캡틴 이강돈 선수 입니다.
나중에 밝혀진 얘기지만
당시 빙그레의 초대 단장으로 부임한 단장이
전년도 까지 삼성에서 프론트로
일하던 사람이라
삼성에서 전관예우 + 신생 구단에게
선심쓰는 차원에서 무상으로
그의 지명권을 양도하기로 합의하여
프로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드래프트 질서를 거부하고도
아무일 없이 프로 생활을 시작할수 있게됩니다.
데뷔 첫 해 .297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빈약했던 빙그레 타선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그리고 이정훈, 장종훈, 강정길 등 좋은 선수들이
합류하면서
(강정길 선수 입니다.)
신생팀 빙그레는 일약 다이너마이트 타선으로 불리며
프로야구 인기팀으로 자리매김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막강 해태에 도전장을 내미는 팀으로 자리잡게 되며
항상 우승에 도전하는 전력을 구축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해태의 벽은 넘지 못했고
4번의 한국시리즈에 모두 출전 하지만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한 채
선수 생활을 마감합니다.
이강돈은 강한 2번 타자로
안타 제조기라 불렸는데
그의 의욕적인 타격은 구질을 가리지 않는
'마구잡이 타법'이라고 불렸습니다.
LG의 적토마 이병규 선수
원조격에 해당하는 배드볼 히터였습니다.
또한 KBO 역사상
최다안타 부문에서 정식으로 시상을
받은 첫 주인공이 였습니다.
빙그레의 주축으로
두 차례 최다 안타 1위와
1988년부터 1990년까지 3년 연속
KBO 외야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고
1993년 올스타전 MVP 에 선정되며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1992시즌 이후 에이징 커브를 겪게 됩니다.
잔부상과 기량하락으로
점차 그 자리를 신인들이 메우면서
이강돈 선수 의 입지는 조금씩 줄어들며.
결국 1997년 은퇴를 하게 됩니다.
은퇴 후
한화 이글스/롯데 자이언츠 코치.
청주고/천안 북일고 감독
대전 MBC에서 해설을 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현역시절
장타력을 올리기 위해서
노팬티로 항상 출전한 것으로도 유명한 선수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