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탑 제휴업소】 | ||||||||||||||||||
하드코어 |
건마(서울外) |
핸플/립/페티쉬 |
휴게텔 |
소프트룸 |
하드코어 |
건마(서울外) |
하드코어 |
휴게텔 |
||||||||||
키스방 |
오피 |
건마(서울外) |
키스방 |
하드코어 |
소프트룸 |
하드코어 |
오피 |
건마(서울外) |
2024.02.05 13:03
부산 중앙초 핸드볼 선수였던 초등학생은
국가대표에 발탁되기도 하며
핸드볼 선수로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키가 상당히 크고 던지기 능력이 너무 출중해서
6학년때 야구부 감독으로 부터 스카웃을 받고 야구를 시작하게 됩니다.
초등학고, 중학교에서는 에이스 였기 때문에
부산의 야구 명분 부산고에 진학을 하게 됩니다.
부산고를 졸업후 부산 경성대에 진학할 예정이였는데
대학 입학 한달 전
노점상을 하시던 어머님이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시고
일년전에는 아버님이 갑작스레 돌아기시면서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이에 어머니의 입원비 마련을 위해
계약금 1천 5백만원, 연봉 1천만원의 헐값에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게 됩니다.
1992년에 고졸 신인으로 맹활약을 펼쳐
롯데 자이언츠의 두번째 우승에 주축 역할을 하며
최동원 이후의 금테안경 우완 에이스인 롯데 염종석 선수 입니다.
https://yt723.org/index.php?mid=community2&document_srl=81367000
염종석 선수는 프로 데뷔 후
2번째 경기에서의 완투승을 시작으로
9승까지 전부 완투승으로 승리투수가 됩니다.
데뷔 첫 해 17승 을 올리는 대활약을 펼쳤고
방어율 1위를 차지해 입단해에 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가 되며
신인왕도 당연히 염종석 선수가 차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데뷔 첫 해부터 혹사를 당하며 (정규시즌 + 포스트 시즌까지 235이닝)
포스트시즌 동안 30 이닝을 투구해 4승 무패 1세이브 1.47의 평균자책점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의 1등 공신이 되었지만
이듬해 전년도의 혹사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드러눕게 됩니다.
더군다나 당시 감독이였던 강병철 감독은
1992년 시즌 종료 후 염종석 선수의 안식년과 재활을 주장했으나
롯데 구단은 한국시리즈 2연패 욕심에 출전을 강요했고
1993년 시즌 종료 후
방위 복무를 하게 하면서 홈 게임에만 출전을 시켰는데,
방위 복무를 하면서도
100이닝을 넘게 던지게 되며 부상이 더욱 악화 되버립니다.
결국 그 다음해 팔꿈치 수술을 받기로 결정는데
팔꿈치 수술 일정을 받아 놓고도
수술 일정 전까지 계속 경기에 등판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승 7패에 평균자책점 2.98이라는
매우 준수한 성적을 거두게 됩니다.
그리고 시즌종료 후 롯데는 염종석 선수와 연봉 재계약을 하는데
100만원을 인상 해줘서 가루가 되도록 욕을 먹게 됩니다.
그리고 2002년 시즌 FA시장의 유일한 투수로 염종석이 시장에 나왔는데
4년 14억에 롯데와 계약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염종석 선수도 혹사의 여파로
그 후엔 10승 이상을 거둔 적이 없었지만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
8888577 시절에는 무너진 마운드 속에서 제 역활을 꾸준히 해줍니다.
여담으로
8888577 암흑기의 절정 이였던
4년 연속 꼴지를 기록한 시점에 2004년 시즌
롯데의 캡틴은 리빌딩 기조에 못이겨 은퇴를 하게 됩니다.
https://yt723.org/index.php?mid=community2&document_srl=81372974
2008년도 시즌엔
롯데의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포함되었지만
시즌 종료 후 방출이 됩니다.
당시 통산 승수가 93승이라
염종석 선수는 롯데 구단을 찾아가 7승만 채우게 해달라고
여러번 부탁을 했지만 롯데로 부터 매몰차게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이는 같은 시절 부상으로 고생하던
이대진 선수와 비교가 되는데..
KIA 타이거즈가 몇 번의 도전 기회를 계속 제공하면서
100승을 채우게 해주었던 것을 보면 롯데의 처사에
상당히 아쉬움이 남을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담으로 sk와이번스와 한화이글스에서
염종석 선수를 영입하려고 했고
한화이글스와는 계약 직전 까지 갔으나
계약 몇일전 롯데 단장의 제안으로 식사를 하는데
식당 밖으로 보이는 사직구장을 보고 눈물을 쏟았다고 합니다.
이때 한 생각이 '롯데 유니폼을 안 입고 100승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 였다고 하며
https://yt723.org/index.php?mid=community2&document_srl=81359014
100승을 포기하고 은퇴를 결정하며 롯데 원클럽 맨으로 남게 됩니다.
전성기 시절 염종석 선수가 보여 주었던
고속 슬라이더는 그에게 염라이더, 염라대왕이라는 별명 까지 붙여 주었는데.
그때의 롯데야구와 염종석 선수의 투구가 아직도 뇌리에 깊게 남아 있습니다.
아... 종석이 행님...
어릴때 사직동 근처에 살았었는데... 야구장 옆에 사직수영장 자주 갔었음.
오전8시 이전에 가면 할인 되서 7시반쯤에 자주 갔었음.
수영장 들어가려 샤워실 가면 롯데 선수들 엄청 많았었음.
그때 우연히 보게된 종석이 행님의 어깨... 정말 누더기가 되어 있었어....울컥 한적있음.
자연스레 고개가 숙여져... 종석이 행님... 꼬추를 보는순간...
행님은... 좋은공을 던질수 있는 어깨도 있고... 사랑하는 팬들도 있고... 그리고 많은것들을 가지고 있었구나... 알게됨... ㅋㅋㅋ
그이후로 우승이 없는 롯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