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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7 10:09
1995년 대학야구
한양대 VS 연세대의 춘계리그전 결승전
2회 투아웃 만루 한양대의 공격때
타석에 좌타자가 들어서게 됩니다.
상대투수는 대학리그 최고 투수 임선동 선수 였습니다.
하지만 임선동 선수는
정면승부 대신 '고의사구' 를 내주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타석..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이 좌타자는
다시 타석에 들어서게 됩니다.
대학 최고의 투수 임선동은 초구부터 직구로 정면승부를
하지만...
솔로 홈런을 허용 합니다.
바로 이타자..
천재 중의 천재 타자 소리를 듣고
고교 2학년때 이미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한
강혁 선수 입니다.
그리고 졸업반 시절 OB베어스와 계약과 입단식 까지
마치게 되는데
당시 고졸선수를 교섭할수 있는 날짜가
11월1일 ~ 11월 15일이였음에도 불구하고
OB베어스는 6월 강혁 선수와 계약서에 사인까지 받고
고졸 야수에게 역대 야수
최고 계약금 6000만 원을 입금하여 줍니다.
하지만 미리 찍어둔 계약식 기념사진에
날짜가 92.6.26 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박혀져 있었고
92년 3월에 이미 강혁선수와 가계약을 했던
한양대학교가 이문제로
“OB와 강혁 선수의 계약은 원천 무효”라며
격렬하게 반발하고 나서게 됩니다.
그리고 한양대학교 입학 조건으로
동기 야구선수 2명을 함께 입학시키고
장학금 지원까지 해주는 조건이였는데
OB-한양대의 2중계약 파문이 터지자
동기들 부모의 거센 항의와 호소...
그리고 강혁선수 조차 심적으로 큰 부담을 느껴
한양대에 진학하기로 합니다.
왜냐하면 고교시절 강혁선수의 형편이 어려워
동기 학부모들은 신일중 시절부터 강혁선수를
아들처럼 지원을 잘해주었기 떄문 입니다.
OB베어스도 한발 안물러 서고
강혁과 한양대와의 쟁탈전이 아닌
프로와 대학의 스카우트 싸움으로 번지게 됩니다.
결국 OB와 한양대는 각각 KBO 와 아마추어 야구협회에
강혁선수를 등록 시켰고
강혁 선수는 ‘이중계약’을 넘어
‘이중등록’ 으로 문제가 걷잡을수 없도록 커집니다.
결국 강혁선수는 OB로 부터 임의탈퇴 후
괴씸죄를 받아 영구실격까지 되며
프로무대에 서지 못하는 처지가 되버립니다.
그 와중에도 강혁 선수는 대학교 졸업반 이던 시절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 참가하여
미국전에서 선발투수 세스 그레이싱어(전 KIA)에게
홈런을 치는 등
0.429의 타율로 여전히 천재 타자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 활약으로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구체적인 금액과
오퍼를 받지만
당시 부친의 지병이 악화돼
집안에 목돈이 필요했던 상황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이 계약금 2억5000만 원을 제시한
실업팀 현대 피닉스 입단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업팀들이 하나둘씩 해체되는 상황이어서
실업팀 투수들의 실력은 아마추어 보다 못한 수준이였고
그 와중에 강혁 선수는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하며 무의미한
‘본즈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던중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아마추어와 프로팀의 드림팀이 탄생하게 되고
강혁 선수는 실업팀 선수로는 유일하게 선발 되며
5할 (20타수 10안타)의 타율로
금메달 획득 선봉장에 섭니다. (1홈런 / 6타점)
그러자 OB는 강혁의 금메달 공로를 인정해주며
영구제명을 6년만에 철회하고
1999년 계약금 5억 7,000만을 지급하며 복권을 해줍니다.
당시 OB는 강혁의 공로 보다는
'우동수 트리오' 가 가동되기 시작한 시점인데
(우즈, 김동주, 심정수)
거기에 좌타 강혁 선수까지 더해진다면
그야말로 최강타선을 만들수 있기에 명분을 만들어
복권을 해주게 된것입니다.
하지만 1999년 시즌을 앞두고 시즌을 준비하는
스프링캠프 도중
왼쪽 어깨 근육 부분 파열 부상을 입게 되면서
시즌이 끝나가는 9월 잠실 LG전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룹니다.
첫 데뷔전 부터 2루타를 기록하며 “역시 강혁” 이라는
찬사가 이어졌지만...
이듬해 여름 음주운전에 걸리면서
SK에 트레이드되고 맙니다.
SK 트레이드 이후 OB시절 다쳤던
어깨근육이 완전 파열이 되며
수술 후 1년뒤 2002년도에 복귀하게 되는데
그사이 SK가 영입한 김기태 선수에게 밀려
백업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버립니다.
설상가상으로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 때
방콕 아시안 게임 이전에 병역 면탈을 시도했던
사실이 드러나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받은 병역특례가 박탈되어
군복무 까지 하게 되고
2007년 시즌 복귀하지만
복귀시즌 끝없는 부진에 시달리며 SK로 부터 방출이 됩니다.
당시 강혁 선수의 신일고 스승 양승호 당시 OB스카우트는
신일고에 강혁, 김재현 선수는 고등학교 입학때 부터
타격이 고교 선수 레벨이 아니었고
프로에 바로 가도 성공할 수 있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양승호 당시 스카우트 말대로
김재현 선수는 고교 졸업후 바로 LG트윈스에 입단
20-20을 기록하며 LG 우승의 1등 공신이 되었고
강혁 선수는 돌고 돌아 우여곡절 끝에 프로에 입단하여
통산타율 0.249, 232안타, 18홈런, 115타점의 성적을 남기고 유니폼을 벗습니다..
OB입장에선 괘씸했겠지만 윈윈하는쪽으로 챙겼으면 어찌될지 몰랐는데 말이죠
그리고 강혁선수를 실제 만난적 있는데.. 화면과 다르게 덩치가 아주 좋더군요. 그당시 OB팬으로서 정말 아쉬웠던 선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