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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8 13:39
KBO 역대 우타자
최다 안타 기록을 보유한 선수 이자
신인왕, 타격왕, 홈런왕, 장타율왕, 출루율 등
여러 커리어를 모두 차지했었던 이 선수는
천안북일고 1학년때 부터
팀의 중심타선 이자 3루수를 맡게 됩니다.
당시 아마야구 지도자. 프로 스카우트들은
타격의 천재성은 양준혁, 김재현, 김동주의 아마추어 시절
보다 낫다고 평가하며
졸업과 동시에 지역팀인
한화이글스에 1차 지명되며 입단 합니다.
바로 1982년 황금세대의 주축이였던
김태균 선수 입니다.
2001년 시즌 한화 입단 후
5월까지 2군 생활을 했으나
1군 콜업 후 그의 타격실력에
고무된 이광한 감독은 김태균 선수를
4번타자 3루수로 기용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연소 4번 타자 기록이며
시즌 내내 맹활약을 하며 당시 약체로 평가받던
한화를 플레이오프에 진출 시키게 됩니다.
당시 김태균 선수와의 경쟁에서 밀린
강석천 선수는 이듬해 은퇴를 하게 됩니다.
당시 19살의 4번타자 김태균 선수는
타율 .335와 20홈런 으로 신인왕을 차지 하는데
저 기록이 88경기 출장으로 이뤄낸 기록이였 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라식수술의 부작용과
2년차 징크스 까지 겹치며 시즌을 망치게 됩니다.
그리고 2003년 시즌에는
30홈런을 기록하게 되지만 당시 이승엽/심정수 선수가
홈런을 펑펑 날리던 시기라 아무 주목을 못받습니다..
그렇게 몇년간 꾸준하게 활약하며
2005년 시즌에는 1루수 골든글러브와
이듬해 한화를 한국시리즈 까지 진출시키며
시리즈에서 2홈런을 치는 등
한국시리즈 에서 맹활약을 하지만
삼성에게 우승을 내주게 됩니다.
그리고 시즌 종료후에는 국가대표에 뽑혀
WBC 까지 출전하며 4강 진출을 달성합니다.
2008년 시즌에는
완성형 타자로 발돋움
이대호 선수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 하며
31홈런을 기록함으로서 리그 홈런왕을 차지 합니다.
그리고 2009년 WBC에서의 맹활약 으로
한화를 떠나 일본 치바 롯데와 3년 계약을 맺고
입단 하게 됩니다.
첫시즌에 타율 0.268에 21홈런 92타점으로
준수한 활약을 펼쳤지만
득점권 타율이 리그 꼴지..
병살24개로 리그 1위였습니다.
하지만 2011년
일본 대지진으로 전력난이 심해지면서
NBP리그가 낮에 많이 열리게 되는데
낮경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손목 부상까지 겹치면서 부진한 1군에서 말소가 됩니다.
그러던 중 그해 7월
김태균 선수는 부상 장기화와
지진의 여파로 인한 심리적 충격 등을 이유로
치바 롯데구단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한화와 1년 15억에 계약을 하고 복귀를 하며
복귀 시즌에
타율 1위와 출루율 1위를 합니다.
이후 몇년동안은 홈런 보다는
똑딱이 타자가 되버리며 “김똑딱” 이라는
비아냥을 듣게 됩니다.
그러면서 2019년 시즌에는
노쇠화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2020년 시즌에는 에이징 커브가 극에 달해
10월 은퇴를 선언하게 됩니다.
김태균 선수는
3할 타율, 4할 출루율, 5할 장타율을 유지한 채
은퇴한 역대 3번째 타자로
한화의 명실상부한 레전드로 남게 되었으며
은퇴 후 에도 방송. 해설등으로 왕성한 활동으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